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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아이들 10명의 ‘아빠’ 김태훈씨 “모두 집에 있으니 힘들죠”

입력: ’20-05-03 07:32  /  수정: ’20-05-03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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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훈씨 제공
영국 BBC 홈페이지 캡처
북한을 탈출한 10~22세 사이의 청소년 10명과 한집에 살며 아빠 노릇을 하는 한국인 김태훈(45) 씨의 사연이 영국 BBC에 2일 소개됐다. 서울에 사는 김씨 사연을 BBC 여기자 이윤녕 씨의 기사로 보니 부끄러움을 감출 길이 없다.

22살 맏형 뻘인 대학생 근성을 비롯해 한창 공부할 나이인데 코로나19 확산 때문에 온라인 강의를 수강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김씨는 요즘 홈스쿨링 부담까지 떠안고 있다. 온라인 수업 첫날 김씨와 10명의 아이들은 와이파이가 가장 잘 터지는 2층 큰 테이블에 둘러 앉아 화상 통화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교육청이 빌려준 장비가 애를 먹였다.

같은 학년의 아이들이 로그인을 잘못하는 바람에 문제가 생겼고, 1년 전에 북한을 탈출한 금성(15)은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어려움을 겪어 도와줘야 했다. 온라인 과제를 제출하는 데도 익숙하지 않았다. 막내 준성(10)은 태블릿으로 유튜브 동영상을 시청하다 꾸지람을 들었다.하지만 김씨는 이틀 만에 아이들이 어느 정도 안정된 것 같다고 말했다.

여덟 아이는 부모 없이 혼자, 다른 피붙이와 함께 북한을 탈출했다. 남녘에는 아무런 연고가 없었다. 어릴 적 그런 모험을 감행해야 했던 이유는 제각각이었다. 부모 없이 조부모와 살아가다 조부모가 연로해 함께 탈출할 수 없거나 온가족이 모험을 감행할 경비를 충당할 수 없어 부모들이 브로커에 돈을 쥐어주고 아이만 떠나보낸 경우도 있다.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 3월 현재 3만 3658명의 북한탈출 주민이 남쪽에 살고 있는데 15% 정도가 19세 이하 청소년들이다. 2017년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96명의 어린이가 부모 없이 서울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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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훈씨 제공
영국 BBC 홈페이지 캡처
김씨 역시 탈북 아이들을 돌보게 될지 전혀 상상하지조차 못했다. 15년 전 출판 일을 하다 남은 시간, 하나원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갓 입소한 하령이란 소년을 만났는데 어머니의 새 직장이 멀어 아들을 혼자 집에 남겨둘 처지였다.

열 살이 된 하령을 돌보기 시작했고 한 명씩 늘어났다. 부모는 완강히 반대하다 몇년 동안 부모와 자식의 연을 끊었다. 김씨와 가장 오랜 기간을 산 아이는 철광인데 열한 살이던 2012년 성탄절에 남쪽에 도착했다. 누이, 어머니와 함께 탈출했는데 붙잡혀 구금됐다. 혼자 석방된 뒤 3개월 뒤 누이가 풀려나자 다시 탈출을 감행해 성공했다.

돌보는 가족이 늘자 김씨는 보건복지부에 그룹홈을 하겠다고 신청했다. 그는 “우리 아이들은 진짜 집으로 생각하지, 시설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부모도 이제는 김씨의 결심을 인정하고 열렬한 지지를 보내주고 아이들을 입양한 손주로 대한다.

금성은 처음 김씨를 봤을 때 나쁜 놈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북한의 고위직처럼 김씨가 뚱뚱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김씨는 먹을거리 등을 대기가 벅차지만 혼자 힘으로 해나간다고 했다. “가장 힘든 점은 식료품 쇼핑이다. 커가는 아이들이라 말처럼 먹어댄다. 엄청난 양의 식품을 카트 가득 싣지만 하루만에 동이 날 때도 있어 낙담한다”고 털어놓았다. 냉장고만 6개이고, 세탁기 두 대가 쉴틈없이 돌아간다. 그는 늘 진공청소기를 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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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훈씨 제공
영국 BBC 홈페이지 캡처
그는 아이들에게 도와달란 얘기도 하지 않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돌봄을 받고 있다고 느끼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중한 자세를 갖추고 자라는 것 말고는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게 우리 부모가 날 기른 방식이다.”

일이 너무 많아 김씨는 정규직을 얻을 수가 없다.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후원을 받고 있다. 재정적 도움을 받는 게 불편해 최근에는 가계에 보탬을 주려고 작은 카페를 개업했다.

재정적 어려움보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불편할 때가 많다. 김씨는 처음에는 전셋값 상승이나 더 넓은 집이 필요해 이사를 자주 했는데 달갑지 않은 시선과 마주했다. “이사할 때마다 이웃들은 어떤 식으로든 알아내더라. 일부는 내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탈북자들은 조용히 지내야 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어떤 때는 경찰이 찾아오기도 했고, 한 아이의 급우는 북한에서 온 간첩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런다고 아이들이 기죽거나 그러진 않는데 처음 학교에 입학했을 때 “전쟁 일으키는 놈들”같은 식으로 불리곤 했다. 김씨는 “남쪽 사람들은 북한에서 누가 왔다고 하면 아래로 내려보거나, 적대감을 드러내는 이도 있다. 아이들은 10대인데 너무 슬픈 일이다. 그들을 정치적으로 바라볼 이유가 없는데”라고 털어놓았다.

사실 많은 어린 탈북자들이 주류 학교를 그만 둔다. 그는 “대안학교가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난 집에서 아이들을 충분히 지원하기 때문에 필요하지 않은 것뿐이다. 정규학교에서 남한 친구들을 사귀고 기억을 만드는 과정은 아이들에게 훌륭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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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진범은 학생회장 선거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담임 선생은 김씨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가 마음의 큰 상처를 입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김씨는 외려 선생님이 그런 얘기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진범이 더 상처를 입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진범은 당선됐다.

해마다 가족은 함께 하는 프로젝트를 고른다. 미술전시회나 뮤지컬을 한다. 최근에는 남한의 관광명소를 돌아본 여행책을 만들었다. “아이들은 하나원에 있을 때 두 가지가 궁금했다고 얘기한다. 하나는 남한의 모습, 다른 하나는 남쪽 사람들이 날 좋아할까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하는 동안 한국의 관광명소를 기록하기로 했다.”

하나원의 아이들이 갖는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는 데 도움이 되라고 책을 기증하고 있다. 아이들의 꿈은 만화작가부터 건축가, 운동선수 등 다양하다. 하령은 이미 집을 떠나 대학 사회학과 졸업반이다.

김씨는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나건 그의 문은 늘 열려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여전히 가족일 것이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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