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약자와 동행하는 법

[마감 후] 약자와 동행하는 법

안석 기자
안석 기자
입력 2024-06-28 03:33
수정 2024-06-28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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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적으로 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피할까, 어떻게 하면 줄일까, 산재(산업재해)가 아닌 쪽으로 할까라고 접근하지 마세요. 공사는 그래야만 합니다.”

서울교통공사 근로자들의 혈액암 집단 발병 사실이 알려진 지난 5일 아침 회의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공사 관계자들 앞에서 보인 반응은 회의 참석자들의 당초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소송하면 그 가족은, 그 피해자 가족은 산재라고 입증해야 하는데…. 회사는 아니라고 하고 흘러가는데 그렇게 흘러가지 않도록 하세요. 되도록 무엇이 원인인지 밝히려고 하세요.”

당시 발언을 들어 보면 서울시장이 아닌 교통공사와 서울시를 규탄하는 시민단체가 한 말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공사는 당초 오 시장에게 보고를 한 뒤 해명자료를 내려고 했지만 “벤젠이나 유성페인트 같은 것을 안 쓰고 있다고 설명하면 안 된다”는 질책에 내려던 자료를 거둬들여야 했다고 한다.

회의를 지켜본 한 참모는 자신이 봐 온 오 시장의 모습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라고 소회했다. 굳이 참모가 아닌 제3자가 봐도 사측이 아닌 노측에 선 듯한 오 시장의 모습은 새롭다.

이처럼 정치인이 진영 논리나 일반적인 선입견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 사람들은 낯설게 느끼거나 때로는 감동하기까지 한다. 보수 정당이 가진 자, 사용자, 기업을 대변하고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 노동자의 인권에는 소홀하다는 일각의 인식에 비춰 보면 더욱 그렇다.

비슷한 사례로는 한동훈 전 장관 재임 시절 법무부가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 피해자의 지연이자를 면제하라는 법원의 화해권고를 수용하기로 한 결정이 있다. 인혁당 피해자들은 국가배상금이 과다 지급됐다는 대법원의 판례 변경으로 배상금 일부와 지연 이자를 다시 돌려줘야 하는 억울한 상황이었는데, 문재인 정부가 임기 5년 내내 손도 대지 않던 것을 한 전 장관은 취임 5개월 만에 해결했다. 진보 정권은 외면했던 독재 정권 피해자의 억울함을 보수 정권에서 보듬자 대중은 한 전 장관을 달리 보기 시작했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국민들이 감동했던 사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취임 첫해 광주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입에 쓴 마스크가 연신 들썩일 정도로 크게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을 때,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일본 원폭 동포들을 만나 위로했을 때, ‘서해 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희생 장병 5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했을 때 이를 지켜본 국민은 진영에 관계없이 함께 감동했다.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아무리 유능한들 국민이 후한 점수를 주는 것은 아니다. 국민이 볼 때 문제 해결은 그들의 당연한 책무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정자들이 약자, 피해자, 비주류를 돌볼 때 사람들은 감동한다. 나아가 가진 자, 사용자의 편에 선다는 비판을 받는 보수가 소외된 자, 일하는 자들과 함께할 때 감동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현 정부의 국정운영과 서울시정을 모두 관통하는 가장 큰 공통분모는 ‘약자 복지’, ‘약자와의 동행’이 아닌가. 어떻게 약자와 동행해야 국민의 감동과 지지를 얻는지에 대한 모범 답안은 대략 나와 있는 것 같다. 보수의 재건은 진보가 겉으로만 말하는 약자와의 동행, 약자에 대한 포용에서부터 시작한다.

안석 전국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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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석 전국부 기자
안석 전국부 기자
2024-06-28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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