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암 김창협은 노론을 대표하는 문인관료의 한 사람이다. 그는 1671년 금강산을 돌아보고 ‘동유기’(東遊記)라는 기행문을 남겼다. 농암은 한양을 출발해 양주, 포천, 철원, 김화, 금성, 회양을 지나고 단발령을 넘어 내금강에 들어섰다. 조선시대 도성에 거주하며 금강산을 유람하는 데 가장 보편적으로 활용된 여정이다.
이 대목에서 겸재 정선의 걸작 ‘단발령에서 바라본 금강산’(斷髮嶺望金剛)을 떠올리게 된다. 겸재는 설악산에서 총석정·삼일포를 거쳐 외금강·내금강을 지나고 단발령을 넘어 한양으로 돌아왔으니 여행 후반은 농암의 역순이었다. 1711년 이루어진 겸재의 금강산행은 농암의 동생 삼연 김창흡과 함께였다.
금강산전기철도 노선이 농암의 금강산 탐방길과 일치하는 것은 흥미롭다. 철도가 단발령 급경사를 스위치백과 터널로 지나가는 것만 다르다. 서울에서 원산을 잇는 경원선은 1914년 개통됐다. 금강산전기철도 건설 초기에는 경원선을 타고 철원에서 갈아타야 장안사까지 갈 수 있었다. 1931년 전 구간이 개통됨에 따라 서울에서 내금강까지 직통으로 가는 금강산철도의 침대열차가 운행되기 시작했다.
금강산 가는 길은 탑승객의 출발지에 따라 다양한 노선이 존재했다. 명암 정식은 1727년 5개월 남짓 금강산 일대를 유람하고 ‘관동록’(關東錄)을 남겼다. 진주 유림인 명암은 토함산에서 동해안으로 북상해 태백산, 오대산, 설악산을 거쳐 금강산에 갔다. 횡성에 은거하던 삽교 안석경은 1761년 양구 두타연과 마성령을 거쳐 장안사에 들어갔다고 ‘동행기’(東行記)에 적었다.
강원 양구군이 금강산으로 가는 옛길의 국가유산 명승 지정을 추진한다는 소식이다. 비무장지대(DMZ) 안팎 510㎞ 길이 35개 코스 걷기여행길의 일부다. 안석경도 지나갔을 두타연은 민간인통제선 내부로 금강산에서 35㎞ 남짓 떨어져 있다. 오염되지 않은 자연에 역사성을 더하는 전략이 성과를 거두어 더 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이기 바란다.
서동철 논설위원
2026-09-18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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