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 HIV 감염 급증에 국가 비상사태 선포
지난 3월 19일 한 의료 단체의 야간 현장 지원팀이 피지의 수도 수바 지역을 찾아 무료 HIV 검사를 제공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남태평양의 섬나라 피지가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자가 급증하자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16일(현지시간) 미 CNN에 따르면 아토니오 랄라발라부 피지 보건장관은 전날 “국가 HIV 비상사태를 공식 선언한다”며 “이는 전염병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신호이자, 우리 국가에 긴급하고 공조된 대응이 필요하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인구 100만명에 미치지 못하는 피지에서는 지난해 한 해 동안 2016건의 신규 HIV 확진 사례가 발생했다. 이는 2019년 대비 16배 급증한 수치로, 현재 성인 60명 중 1명이 HIV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CNN은 “이는 HIV 감염률이 감소하고 있는 전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는 결과”라고 지적했다. 앞서 피지는 지난해 1월 처음으로 HIV 유행을 선언하고 검사를 대폭 확대한 바 있다.
이번 유행은 신생아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이브더칠드런 피지 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59명의 영아가 어머니로부터 HIV에 감염됐다. 최근에는 생후 2개월 된 아기가 HIV와 결핵에 동시에 감염된 최연소 환자로 확인되기도 했다.
랄라발라부 장관은 피지 임산부 50명 중 1명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감염된 산모는 임신과 진통, 출산, 수유 과정을 통해 아이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 있다.
지난 4월 20일 피지의 수도 수바의 한 도로변에 HIV 예방 캠페인 현수막이 게시돼 있다. 최근 피지 내 HIV 감염자가 급증함에 따라 보건 당국 등은 홍보를 강화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유엔 에이즈합동계획(UNAIDS)의 피지 담당 고문 레나타 람은 피지의 HIV 위기가 여러 요인에 의해 발생했다면서도 “정맥 주사를 이용한 약물 투여가 바이러스 전파의 주요 원인이자 급격한 가속 요인이 됐다”고 밝혔다.
최근 수년간 피지는 남북미 대륙에서 호주, 뉴질랜드 및 아시아로 이동하는 마약 밀매의 핵심 중계지로 떠올랐다. 이 과정에서 피지 국내에 정맥 주사형 약물 사용이 급증했고, 주사기를 돌려쓰는 행위가 흔하게 이어지면서 바이러스가 급격히 확산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낮은 콘돔 사용률과 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더해지면서 성적 접촉을 통한 전파도 지속되고 있다. 현지 보건 당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감염 경로가 확인된 신규 HIV 사례 중 절반은 정맥 주사 약물 사용, 나머지 절반은 성적 접촉에 의한 것으로 집계됐다.
방치된 감염자와 사회적 낙인 역시 사태를 키우는 요인이다. 람 고문은 “가장 우려되는 것은 확산 속도와 자신이 감염된 사실조차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수”라고 전했다. 실제 피지 내 HIV 감염자 중 본인의 감염 사실을 인지하는 비율은 약 39%에 불과하며, 치료받는 비율은 22%에 그친다.
치료 공백이 이어지면서 사망자도 늘고 있다. 보건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HIV 관련 사망자는 117명으로, 2021년(25명) 대비 4배 이상 증가했다.
랄라발라부 보건장관은 감염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경계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국민들에게 HIV 감염자를 비난하거나 배척하지 말아 달라고 강조하며 “사회적 낙인은 정작 도움이 되는 보건 의료 서비스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고 호소했다.
세줄 요약
- 피지, HIV 급증으로 국가 비상사태 선포
- 성인 60명 중 1명 감염 추정, 신규 확진 16배 증가
- 주사약물·낮은 콘돔 사용·낙인, 확산 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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