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우연히 살아남지 않게 여성안심대책 확실히/오달란 전국부 기자

[마감 후] 우연히 살아남지 않게 여성안심대책 확실히/오달란 전국부 기자

오달란 기자
오달란 기자
입력 2023-08-25 00:27
수정 2023-08-25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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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달란 전국부 기자
오달란 전국부 기자
눈발 흩날리는 밤 주연은 고장 난 차에 앉아 견인차가 오기를 기다린다. 길 가던 낯선 남자가 멈춰 서더니 주연에게 다가와 차를 봐주겠다고 한다. 주연의 거절에 남자는 자리를 뜨지만, 이내 망치를 들고 와 차를 부수며 주연을 납치해 잔인하게 살해한다.

영화 ‘악마를 보았다’의 첫 장면이다. 연기 잘하기로 유명한 남자 배우의 인생 연기가 궁금해 최근에 보았다. 정작 눈에 들어온 건 명품 연기가 아니라 연쇄 강간 살인범 장경철에게 당한 피해자들이었다. 정류장에서 혼자 버스를 기다리던 여자, 학원 차를 타고 집에 가던 어린 여중생, 병원 업무를 보던 간호사, 귀가하던 주연의 여동생 세연까지…. 평범한 일상을 살던 여성들이 성폭행당하고 살해당했다.

영화는 현실의 지독한 반영이다. 대낮 서울 한복판에서 강간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서른 살 최윤종은 관악구 신림동의 한 공원 둘레길에서 여성을 목 조르고 성폭행한 혐의로 붙잡혔다. 사경을 헤매던 피해자는 이틀 뒤 끝내 숨졌다. 최윤종은 피해자와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고 “성폭행하고 싶어 범행했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폐쇄회로(CC)TV가 없는 곳을 찾으려고 주변 아파트를 두 시간 동안 배회하고, 흉기까지 미리 사둔 걸 보면 불특정 여성을 노리고 치밀하게 계획한 범죄라고 볼 수밖에 없다.

7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2016년 5월 김성민(당시 34살)은 강남역 근처 건물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을 흉기로 찔러 무참히 살해했다. 남녀 공용화장실에서 1시간 30분을 기다리며 무방비 상태의 여성을 범행 대상으로 골랐다.

그때의 뜨거웠던 추모 열기를 기억한다. 강남역 10번 출구는 추모의 글을 적은 접착식 메모지와 흰 꽃들로 뒤덮였다. 안전한 일상을 빼앗긴 여성들은 두려워했고 분노했다. 1000여개의 메모지 중에는 “우연히 살아남았다. 나의 이야기가 될 일이었다”라는 글귀도 적혀 있었다. “여성을 보호하지 마세요. 보호받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드는 데 동참하세요”라는 문장도 기억에 남는다.

사건 이후 공공화장실 비상벨과 방범용 CCTV를 추가 설치하는 등 여성 안전을 위한 정책이 쏟아졌지만 여전히 비극은 반복되고 있다. 이번에도 정부는 어김없이 여러 대책을 내놓았다. 경찰의 치안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의무경찰제를 부활시키겠다고 한다. 서울시는 공원 둘레길, 등산로 등 범죄 사각지대에 CCTV를 더 많이 달겠다고 했다.

전문가 말을 들어 보면 어떤 지역이 늘 관리되고 있다는 인상만 심어 줘도 범죄 예방 효과가 크다고 한다. 산책로 주변에 무성히 자라난 수풀을 정기적으로 제거하고, 오래 비어 있는 폐가, 쓰레기 무단투기 장소의 환경을 개선해 늘 사람 손길이 닿는 곳이라는 신호를 주면 잠재적 범죄 가능성도 현저히 낮아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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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5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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