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지하철 방화, 시민들이 참사 막았다…“깜깜한 선로 달려”

출근길 지하철 방화, 시민들이 참사 막았다…“깜깜한 선로 달려”

김우진 기자
입력 2025-06-01 17:25
수정 2025-06-01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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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들, 침착하게 신고하고 자체 대피·진화도
기관사도 진화한 뒤 승객 대피 후 열차 옮겨
전동차 불연성 소재도 한몫...1량 일부 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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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마포역 구간에서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 승객들이 열차에서 내려 선로를 통해 대피하고 있다. 영등포소방서 제공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마포역 구간에서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 승객들이 열차에서 내려 선로를 통해 대피하고 있다. 영등포소방서 제공


“뛰어요!” “나가야 해요!”

지난달 31일 아침, 서울 지하철 5호선을 타고 출근하던 김모(26)씨는 마포역을 앞두고 겁에 질린 승객들이 열차 한쪽에서 우르르 달려오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찌르자 김씨도 그대로 일어나 함께 뛰었다. 전동차 끝 칸으로 모여든 사람들은 울먹이며 가족에게 전화를 걸었다. 열차가 멈추자 한 시민이 “대피해야 한다”며 전동차 문을 열었다. 김씨는 “깜깜한 지하선로를 시민들과 함께 무작정 달렸다”고 전했다.

60대 남성이 서울 지하철 5호선 전동차에 불을 질러 승객 400여명이 대피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22년 전 ‘대구 지하철 참사’와 닮은 사건이지만, 이번 방화는 23명이 연기흡입 등 병원으로 이송된 것 외에 대규모 인명 피해로 이어지지 않았다. 기관사와 승객들이 안전 수칙에 맞춰 신속하고 차분하게 대응한 점이 주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①시민들의 신고와 침착한 대처

경찰과 소방, 목격자 등에 따르면 불은 31일 오전 8시 43분 여의나루역∼마포역 사이 터널 구간을 달리던 열차의 네 번째 칸에서 시작됐다. 방화 피의자인 60대 남성 A씨는 약 2ℓ짜리 통에 인화성 물질로 추정되는 액체를 담아 열차에 탑승한 후 별안간 바닥에 액체를 뿌렸다. 이후 라이터형 토치로 옷가지 등에 불을 붙였다. 순식간에 객실이 연기로 가득 찬 상황에서도 승객들은 다른 칸으로 달려 이동하는 한편 비상 통화 장치로 기관사에게 발 빠르게 상황을 알리고 객실 의자 하단에 있는 비상 개폐장치를 이용해 열차 문을 열었다. 이후 터널로 나온 승객들은 선로를 따라 한 줄로 질서 있게 걸으며 대피했다. 승객들은 휴대전화 손전등을 비춰 주며 서로를 도와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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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오전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한 서울 지하철 5호선 마포역에서 구급대원들이 환자를 긴급 이송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31일 오전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한 서울 지하철 5호선 마포역에서 구급대원들이 환자를 긴급 이송하고 있다. 뉴스1


②28년차 기관사의 책임감 있는 대응

홀로 전동차를 운행하던 28년차 베테랑 기관사는 상황을 파악한 후 차분하게 전동차를 정차시켰고, 곧바로 불이 난 장소로 향했다. 그는 승객들과 소화기로 불을 끈 뒤 승객들을 모두 대피시켰다. 그는 연기 흡입으로 어지러운 상태에서도 5호선 정상 운행을 위해 애오개역까지 열차를 옮긴 후에야 병원을 찾았다. 김진철 마포소방서 소방행정과장은 현장 브리핑에서 “열차에 진입했을 당시 기관사와 승객이 소화기로 자체 진화해 작업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③전동차의 불연성 소재

대구 지하철 참사를 계기로 전동차 내장재가 불연성이나 난연성 소재로 교체된 점도 참사를 막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서울교통공사는 2003년 9월부터 단계적으로 전동차 골격과 바닥재, 객실 의자를 불에 타지 않는 스테인리스 등으로 교체했다. 지하철 1량이 일부 소실되고 2량으로 그을음이 번지는 데 그쳤다. 재산 피해액은 3억 3000만원으로 추산된다.

A씨는 지하철 선로를 통해 들것에 실려 여의나루역으로 나오다 경찰에 검거됐다. A씨의 손에 유독 그을음이 많은 걸 경찰이 의심하고 추궁하자 범행을 인정했다. A씨는 경찰에 “이혼소송 결과에 불만이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조만간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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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점검반을 편성하고 주요 시설을 점검 중이다. 서울교통공사가 담당하는 1∼8호선 276개 전 역사와 열차, 차량기지 등을 대상으로 경찰과 협력해 특별 경계근무를 운영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선거 기간 유세 등으로 인한 인파 밀집 지역이나 각종 축제와 행사장 등에 대한 시민 안전 활동을 강화하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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