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김세연 전 국회의원

[열린세상]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김세연 전 국회의원

입력 2021-11-18 17:56
수정 2021-11-19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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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연 전 국회의원
김세연 전 국회의원
요즘 정치 기사를 거의 읽지 않는다. 기사를 읽을수록 온전한 정신상태를 유지하기 어렵게 되기 때문인데, 같은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을 종종 보게 된다. 상대를 악마화하고 권력 쟁취를 위해 갈등과 혐오를 조장하는 데 이골이 난 정치 기술자들이 기량을 발휘한 결과 이제 정치에서는 흉포화한 게임의 룰을 따르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하게 됐다. 식물로 치면 정상적인 작물은 싹이 트지 않거나 싹이 터도 곧 말라 죽고 마는 지경이 되는 셈이다. 책임 소재를 따지고 누구를 비난하는 것은 무의미할 수 있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최소한의 진단은 해 보고자 한다.

1987년 대통령 선거 이후 아직까지 이어지는 영호남 ‘지역 갈등’이 느리지만 지속적으로 완화되고 있는 반면 보수·진보 사이의 ‘이념 갈등’은 여전히 첨예하고, ‘세대 갈등’에 ‘성별 갈등’까지 더해져 삭막하기 그지없다. ‘매스미디어’ 시대가 가고 ‘소셜미디어’ 시대가 오면서 추천 알고리즘의 마법에 의해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확증편향은 심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공동체 전체를 아우르는 정치적 통합을 성공적으로 해내기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게 됐다.

보수 정당의 일원으로서 ‘내 탓’부터 해 보겠다. 자유한국당 시절 끝이 없는 퇴행적 행각으로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가 미래통합당으로 거듭나면서 이전과 다른 DNA를 수혈받아 서울시장, 부산시장 선거를 승리하고 최초의 30대 당대표를 선출한 국민의힘이다. 그러나 최근 대선 후보 선출을 전후한 사정을 보면 불길하게도 다시 과거 자유한국당 시절로 회귀하고 있는 감을 지울 수 없다. 4월의 서울·부산시장 후보 선출 방식이 예비경선은 국민 80%, 당원 20%, 본경선은 국민여론조사 100%였던 반면 11월의 대선 후보 선출 방식은 반대로 당원 비중이 1차 컷오프 20%, 2차 컷오프 30%, 최종 50%로 뒤로 갈수록 압도적으로 높아졌다. 쉽게 말해 4월에는 수도권 20대가 표밭을 주도했다면 11월에는 다시 영남 60대가 선거전을 압도하게 된 것이다. 4월과 11월의 경선 룰이 거꾸로 됐다고 가정하면 후보 선출 결과도 완전히 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

결코 전체가 그런 건 아니지만 지역적으로 영남, 연령적으로 노년층에 속하는 국민의힘 당원의 주류 상당수는 지금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대해 부정적이다. 2016년 말 국민 80%가 찬성했고 역사의 페이지가 한참 넘어가 있는데도 아직까지 ‘배신자론’의 열혈 홍위병이 돼 보수 정당 내 소위 ‘개혁보수’의 싹을 밟아 죽이고 있다. 시대정신을 담아 정당을 쇄신해야 할 주체들이 당내 반동세력의 발호에 견디다 못해 나가떨어지고, 혹시나 하는 기대를 걸고 최근 들어온 젊은 당원들은 다시 탈당하며, 남겨진 당은 급속도로 노쇠화ㆍ패거리화하고 다시 시대부적응 정당으로 회귀할 위험에 처해 있다.

참고로 현대 민주국가에서 개념조차 성립이 안 되는 ‘배신자론’ 따위를 여전히 펼치는 사람들은 정작 본인들이야말로 대한민국 헌법에서는 퇴출돼야 할 ‘왕당파’임을 커밍아웃하는 것이고, 민주공화국 시민 자격을 ‘셀프 박탈’하는 것임을 자각하기 바란다. 한마디만 덧붙인다. 이 나라를 일으킨 세대여, 그대들의 손으로 일으킨 이 나라를 기어이 이렇게 무너뜨려야겠는가. 지금까지 나라에 바친 기여와 우리에게 베푼 은혜에는 깊이깊이 감사하지만 이제 우리는 더이상 당신들에게 진 빚이 없게 됐다. 바뀐 세상을 보고도 변화를 이해할 수 없다면 오기와 독선을 내려놓고 그냥 ‘세상이 달라졌구나’ 하면서 다음 세대를 믿고 판단을 맡겨 주기를 바란다.

더불어민주당도 상태가 좋은 형편은 아닌 것 같다. 내부에서 국민 상식에 부합하는 견해를 밝히는 의원들이 핍박당하는 형국을 보니 새누리당이 마지막에 급속도로 망가지던 상황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또한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저버리고 팬덤에 취해 특정인을 위한 정치적 사병 집단, 돌격대를 자임하는 이들의 행태는 결코 정상적인 민주시민의 모습이라고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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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모든 것은 좌우 극단세력의 과잉대표를 방치하며 시민의 역할을 다하지 않은 우리에게서 비롯된 문제다. 2000년 전 플라톤의 경고로 마무리 짓겠다.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
2021-11-1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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