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살릴 400조 나라살림 처리 지연 우려…정책방향도 안갯속

경기살릴 400조 나라살림 처리 지연 우려…정책방향도 안갯속

입력 2016-10-30 10:37
수정 2016-10-30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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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의 ‘성장절벽’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일자리와 경제활력 제고에 초점을 맞춘 내년 예산안 심사가 벌써부터 차질을 빚고 있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국회의 예산권 심사 권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후폭풍이 길어질 경우 예산안 법정 처리시한을 넘길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재정의 성장 기여도가 갈수록 커지는 가운데 예산안 처리 지연으로 연초부터 정부 돈이 풀리지 않으면 우리 경제가 새해 벽두부터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최순실에 묶인 국회…예산안 심사·처리에 ‘경고등’

지난 26일부터 사흘간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는 이른바 ‘최순실 청문회’로 변질돼 운영됐다.

황교안 국무총리와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각 부처 장관이 출석해 자리를 지켰지만 최순실 의혹 공방만 진행됐다.

2017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내용은 물론 거시경제 및 재정 여건에 관한 질의는 실종됐다.

400조원에 달하는 ‘슈퍼예산’이 편성됐지만 벌써부터 졸속심사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국회는 오는 31일부터 경제부처와 비경제부처 부별 심사, 소위원회 활동과 의결을 거쳐 내달 30일 전체회의에서 내년도 예산안을 의결할 계획이다.

문제는 최순실 게이트 파문이 언제,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지 예측조차 힘들다는 점이다.

예결위 종합정책질의에 이어 부별 심사 등으로 최순실 파문이 이어지면 최악의 경우 예산안 처리가 법정 시한을 넘길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헌법상 예산안은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인 12월 2일까지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국회선진화법 도입으로 최근 2년간 예산안은 법정 시한 내 처리됐지만 올해는 이를 장담하기 쉽지 않다.

예산안이 12월 2일을 넘기면 그만큼 실제 집행이 늦어진다.

정부 관계자는 “예산안을 공고하고 자금배정 계획을 확정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을 고려해 헌법에서 매년 12월 2일까지 예산안을 처리토록 한 것”이라며 “이를 넘기면 언제 처리될지 기약조차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예산안 처리가 지연되면 당장 1월부터 집행돼야 할 예산의 발이 묶이게 된다.

산업 구조조정 등으로 일자리 사정이 악화되고 지역 경기마저 침체된 상황에서 나랏돈이 풀리지 않으면 우리 경제의 하방 리스크는 더 커지게 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 경제 성장률은 2.6%로 이중 재정기여도가 3분의 1가량인 0.8%포인트(p)를 차지했다. 저성장 기조 속에서 재정이 그나마 버팀목 역할을 하는 셈이다.

지방 경기를 둘러싼 불확실성도 확대된다.

지방자치법 등에 따라 지방의회는 회계연도 개시 15일 전인 12월 15일까지 예산안을 의결해야 하는데 국회 예산안 의결이 늦춰지면 지방재정 편성도 덩달아 지연될 수밖에 없다.

기재부 관계자는 “예결위가 파행을 겪는 최악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종합정책질의에서 예산안과 관련한 질의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아직 부별 심사와 소위 등이 남아있는 만큼 예산안이 정상적인 심사를 거쳐 법정 시한 내 처리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 동력 떨어진 관료사회…내년 정책·경기전망도 차질 우려

비단 예산안 처리에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대내외 악재가 산재한 상황에서 최순실이라는 대형 돌발 이슈까지 덮치면서 관가에는 그나마 남아있는 활력마저 급격하게 떨어지는 분위기다.

당장 기획재정부는 12월 중순 내년도 경제정책 방향 발표를 앞두고 있어 지금의 정국이 더욱 부담스럽다.

내년 경제정책 방향을 내놓으려면 청와대가 기본적인 틀을 제시해야 하는데 현재로써는 이런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정의 컨트롤타워가 부재하다 보니 경제정책 방향 수립을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부처 간 정책 조율도 난항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경제정책 실효성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현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정책을 시행하기 위한 정무적인 동력이 사실상 바닥까지 내려앉았기 때문이다.

경제를 견인하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일자리 대책, 서비스 경제 발전 전략 등의 시행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을 중심으로 불거진 의혹들이 깨끗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대통령의 사람들’로 구성된 현 내각과 정책에 대한 불신이 계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해운 산업 구조조정, 가계부채 문제 등 국내현안뿐만 아니라 미국의 금리 인상,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협상 등 신속하게 대응해야 하는 대외변수까지 산재한 점도 정부로서는 큰 부담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내년 경제 성장률 목표치를 당초 3%에서 낮춰잡을 수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레 제기된다.

정부는 최근 어수선한 정국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도 공식적인 반응은 자제하고 있다.

경제부처의 한 과장급 공무원은 “일단 내년 경제정책 방향 등 예정된 것들은 열심히 준비하고 있고 계획대로 진행할 것”이라며 “아무런 변동사항도 없다”고 강조했다.

다른 국장급 공무원은 “사실 최순실 이슈 등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 다들 어떻게 진행될지 관심이 많지만 일절 언급을 꺼리고 있다”며 어수선한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또 다른 공무원은 “일부 부처는 내년 초 고위공무원 인사 문제가 걸려있어 청와대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최근 사태가 터지면서 더 어수선해졌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 전문가들 “정치와 행정 분리…경제관료들이 중심 잡아야”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최근의 혼란스러운 정치적 상황이 경제정책 추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현재 한국 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상황이 녹록지 않은 만큼 경제 관련 부처는 정치 영역과 관계없이 흔들림 없이 정책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치권이 사실상 마비됐기 때문에 지금 관료들 입장에서는 중요한 정책 방향에 대한 지침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관례대로 주어진 일을 진행하는 것이 더 큰 혼란을 막고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시급히 정치와 행정을 분리해야 한다”면서 “내각 총리와 장관을 다수 바꿔서 전문성 있는 이들이 소신 있게 정책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치권 일각에서 제시된 ‘거국내각’ 방안과 마찬가지로 중립적인 전문가들로 구성된 내각을 하루빨리 구성해 현 시국을 수습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는 데 있어 우려가 커지는 상황은 맞다”고 진단했다.

현재 정치적 불안정은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여야가 대립하는 일반적인 경우의 정치 불안정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유 부총리 등 경제부처 장관들을 유임시켜 안정적으로 경제정책을 꾸려 나가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경제부총리는 이 문제(최순실 의혹)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만큼 다른 부처들을 컨트롤해 정치적 불안정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계와 기업, 수출과 내수의 동반침체가 나타나는 등 우리 경제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고 진단한 김 교수는 “한순간에 위기가 촉발되지 않도록 경제부처 관료들이 잘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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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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