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평화 상징물에 덕지덕지… 이게 예술인가

세계 평화 상징물에 덕지덕지… 이게 예술인가

오달란 기자
오달란 기자
입력 2018-06-10 22:50
수정 2018-06-10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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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베를린장벽 그라피티 논란

佛전시회 연 거리예술가 정태용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메시지”
독일에서 기증받은 원본에 낙서
동·서독 통일 기원 글 등 지워져
중구 “문화재 훼손 수사 의뢰 검토”
서울 중구 청계천 길옆에 설치된 베를린장벽의 동독 쪽 벽면. 동독 주민들의 장벽 접근이 제한된 까닭에 콘크리트 그대로의 모습이 간직돼 있었지만 현재는 그라피티 아티스트 정태용씨의 브랜드 히드아이즈를 비롯해 검정 글자들이 페인트로 칠해져 있다.
서울 중구 청계천 길옆에 설치된 베를린장벽의 동독 쪽 벽면. 동독 주민들의 장벽 접근이 제한된 까닭에 콘크리트 그대로의 모습이 간직돼 있었지만 현재는 그라피티 아티스트 정태용씨의 브랜드 히드아이즈를 비롯해 검정 글자들이 페인트로 칠해져 있다.
독일 베를린시가 서울시에 기증한 베를린장벽이 지난 8일 밤 그라피티 아티스트의 낙서로 훼손됐다. 예술행위가 아니라 문화재 훼손 범죄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3월 ‘히드아이즈’라는 복합예술브랜드를 론칭한 그라피티 아티스트 정태용(테리 정·28)씨는 지난 8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서울 중구 청계천로 한화빌딩 앞에 있는 베를린광장에서 찍은 사진을 게시했다. 정씨는 “전 세계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를 위하여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며 베를린장벽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그린 그림을 소개했다.

높이 3.5m, 폭 1.2m, 두께 0.4m의 베를린장벽은 1961년 동독에서 설치했던 것으로 독일이 통일되면서 1989년 철거돼 베를린시 동부 마르찬 휴양공원에 전시됐던 것이다. 베를린시는 우리나라의 통일을 바라는 뜻에서 2005년 9월 베를린장벽을 서울시에 기증했다.
정태용씨가 베를린장벽의 서독쪽 벽면에 자신의 고유 패턴을 그려넣은 모습. 정씨는 이 패턴에 대해 “우주와 더불어 끝없이 창조와 번영을 희구하는 한민족의 이상을 담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태용씨가 베를린장벽의 서독쪽 벽면에 자신의 고유 패턴을 그려넣은 모습. 정씨는 이 패턴에 대해 “우주와 더불어 끝없이 창조와 번영을 희구하는 한민족의 이상을 담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베를린장벽의 서독 쪽 벽면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었기에 이산가족 상봉과 통일을 염원하는 글, 그림 등이 새겨져 있다. 반면 동독 쪽은 깨끗한 콘크리트 면이다. 동독은 시민들의 장벽 접근을 제한했고, 벽면을 L자로 꺾어서 바닥에 턱까지 만들어 차량으로 서독을 향해 탈주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이처럼 원형을 그대로 간직한 3폭의 베를린장벽은 독일에도 별로 남아 있지 않아 역사적 보존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정씨의 그라피티 탓에 서독 쪽 벽면에 있던 역사의 흔적은 형형색색 페인트로 뒤덮여 형체를 알아보지 못하게 됐다. 자유와 거리가 멀었던 동독 사회 분위기를 짐작게 해주는 맞은편 벽도 정씨가 남긴 글귀로 훼손됐다.

정씨는 2014년 파리 루브르박물관 아트살롱페어에 초대 전시회를 여는 등 거리예술계에서 주목받는 작가로 알려졌다.

예술적 의도였다 해도 그라피티는 엄연한 범죄행위다. 형법상 재물 손괴죄 등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베를린광장이 서울 중구 소유인 점을 감안하면 공용물 파괴죄로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형도 가능하다. 정씨는 문화재 훼손이라는 논란이 제기되자 인스타그램을 탈퇴했다.

베를린광장 관리 업무는 서울시에서 중구로 이관된 상태다. 서울 중구 관계자는 “현장관리팀이 매일 순찰하는데 미처 낙서를 발견하지 못했다”면서 “내부적으로 경위를 파악한 뒤 수사 의뢰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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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2018-06-11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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