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송병채 씨. 독립기념관 홈페이지 캡처
‘영세중립화통일론’ 등을 주장해 반국가적인 선동 혐의로 처벌받았던 독립운동가가 65년 만에 간첩 누명을 벗었다.
전주지법 군산지원 형사1부(백상빈 부장판사)는 특수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받은 고(故) 송병채 씨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고 19일 밝혔다.
고인이 사망한 지 58년 만이다.
송씨는 사회대중당 이리시당 창당준비위원으로 활동하면서 1961년 4월 29일 전북 이리시(현 익산시)에서 강연회를 열고 중립 통일 등을 발언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혁명재판소는 송씨가 여러 언론사와 공산주의를 용인하는 ‘용공정책’을 사회에 퍼뜨리기로 모의한 이후 강연회를 열고 반국가적인 선동을 주도했다고 봤다. 송씨가 “남북통일은 중립화통일 이외에는 다른 방안이 없다” 등의 발언으로 북한을 이롭게 하고 반국가단체 활동에 동조한 것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송씨는 1968년 억울함을 풀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이후 송씨 손자는 ‘고인이 억울하게 간첩으로 내몰렸다’면서 재심을 청구했다.
재심 재판부는 “영세중립화통일론의 내용은 ‘미소 양국의 세력권에서 벗어나는 정치적, 군사적 완충지대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는 북한의 정치·경제체제인 사회주의·공산주의를 제창한 것이 아니고, 당시 북한이 주장하던 연방제 통일방안과 동일하거나 유사하지도 않다”며 “강연회에서 중립화통일 내지는 평화통일을 지지하거나 교화법의 제정을 주장하는 내용의 연설을 하게 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의 범위에 속하는 행위로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이익이 된다는 정을 알면서 북한의 활동을 찬양·동조하는 등의 행위를 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의 수사와 재판 기록은 검찰청, 국가기록원, 국방부 감찰단 등 어느 곳에도 남아있지 않아 구체적 유죄의 증거와 근거를 확인할 수 없다”며 “결국 이 사건의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다”고 했다.
송씨는 1926년 서울에서 6·10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그해 7월 전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을 선도해 동맹휴학을 주도하는 등 적극적으로 일제에 항거했다. 또 1929년 3·1운동 10주년을 기념하는 전단을 살포하고 시위 전개를 계획하던 중 일제 경찰에 붙잡혀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송씨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고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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