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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왕조를 열면서 지금의 충남 계룡시 3군사령부 터를 도읍으로 점찍고 궁궐공사를 시작한다. 하지만 곧 한양의 북악산 아래로 수도의 위치를 바꾸게 된다. 풍수지리를 공부했다는 사람 가운데 몇몇은 이 과정에 오류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계룡산을 버리고 한양을 택한 것이 잘못이고, 인왕산을 버리고 북악산을 택한 것도 잘못이라는 것이다.개인적으로 조선의 서울이 계룡산 어귀였다면 지금쯤 우리나라와 중국의 국경선은 임진강쯤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물론 수도의 위치 문제는 생각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한양을 설계한 사람들이 궁궐 자리를 북악산 아래로 점찍은 것은 옳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1920년대 중학천의 모습. 해자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상당한 폭과 깊이를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제는 한국 강제병탄 이후 광화문을 지금의 국립민속박물관 정문 자리에 옮겨 세웠다.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1910~1920년대의 백운동천 신교. 백동수도원 수도사들의 사진으로 ‘성 베네딕도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소장 서울사진’에 담겨있다.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시청앞 쪽에서 광화문을 바라본 모습. 맨 왼쪽에 보이는 포시즌스호텔 오른쪽의 좁은 골목의 지하로 백운동천이 흘러들어와 청계천에 합류한다.
복원한 중학천 유구의 일부. 교보문고 뒷골목이다.
서울시는 복개천 위로 중학천을 상징하는 인공 시냇물을 만들어 놓았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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