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역사공존형 재개발/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역사공존형 재개발/서동철 논설위원

입력 2013-05-22 00:00
수정 2013-05-22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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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서울 답십리의 시멘트 블록으로 지은 집에는 포도나무가 있었다. 화동 한옥의 뒷간은 ‘푸세식’이었고, 응암동 미니 2층에서는 반지하에 처음으로 내 방을 가졌다. 삼선교와 대조동에서도 살았다. 그런데, 지금 옛집은 한 채도 남지 않고 모두 아파트나 다가구주택으로 변했다. 희미해져 가는 기억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흔히 서울을 두고 조선이 도읍한 기간만 따져도 600년이 넘고, 한성백제부터 시작하면 2000년이 넘는 유서 깊은 역사의 도시라고 한다. 하지만 불과 20~30년 전 내가 살던 집, 내가 살던 동네의 모습조차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무섭게 변모해 가는 도시가 또한 서울이다. 서울시가 재개발이나 재건축 과정에서 해당 마을의 옛 모습 일부를 남기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을 밝힌 것은 그런 점에서 의미 있다. 이미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는 대표적인 재건축지구인 개포주공1단지의 재개발 계획을 승인하면서 기존 아파트 한 동의 일부를 남겨 역사롤 보존하는 데 합의했다고 한다. 옛날 삶의 흔적을 남기는 역사공존형 도시 재개발 정책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박원순 시장의 아이디어라고 하는데, 서울시는 아예 조례로 만들어 시장이 바뀌어도 중단되지 않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해당 재개발 지역의 주민들이다. 대단지의 일부라지만 재산권의 양보가 불가피하고, 보존하는 데도 비용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개포주공1단지 주민 사이에서도 35층 최신 아파트 단지의 흉물이 될 것으로 우려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새로 짓는 아파트 단지들은 대부분 상당한 규모의 주민편의 및 문화공간을 조성한다. 옛 아파트의 일부 가구는 내부까지 원형을 유지하는 역사공간으로 보존한다고 해도, 남는 공간은 도서관과 경로회관, 휴식공간으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역사가 담긴 문화공간으로 명물이 되었으면 되었지 흉물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참에 역사공존형 재개발의 개념을 지하 유적 보호로 확대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서울시에 하고 싶다. 역사도시 서울은 어디를 파나 과거의 흔적이 남아 있다. 재개발 과정의 발굴조사에서 보존할 만한 유구가 드러나면 당연히 보존해야 한다. 하지만 전체 유적의 보존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고 판단되는 유구도 일부는 남겨 역사문화유산으로 적극 활용하자는 것이다. 이미 서울시청사를 새로 지으면서 발굴된 군기시 유적의 일부를 문화공간으로 조성한 서울시다. 서울시의 역사공존형 재개발이 문화적 도시 재개발의 세계적 모범사례로 기록되는 날이 기다려진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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