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대추야, 대추나무야

[길섶에서] 대추야, 대추나무야

황수정 기자
입력 2026-10-04 23:55
수정 2026-10-05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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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막 시골집을 다녀오면 속앓이를 한다. 시골집 마당이 날마다 보고 싶다.

실바람 한 줄기만 지나가도 그 마당은 소란스럽다. 대추알 붉은 것들은 제풀에 지쳐 떨어지고, 못다 붉은 것들은 한나절을 더 머뭇거리고. 순정한 생의 질서는 아침에 점심에 저녁에 보고 또 보아도 심심할 새가 없다.

마흔 살을 먹어 가는 대추나무, 그 옆에 삼십 년째 잘 늙은 무화과나무, 그 옆에 제 나이를 잊어버리고 늙는 석류나무, 그 아래 동백나무, 생강나무.

나이테는 들쭉날쭉, 키는 제멋대로. 그 마당에서 일류 조경사는 무슨 소용이며, 베테랑 정원사는 무슨 소용이람.

화날 일도 없이, 바쁠 것도 없이 늙은 나무들은 늙으신 어머니한테 기대어 어린애처럼 나이를 먹어 간다.

살아갈수록 겁이 나는 일은 무얼까. 벌레 먹혀 떨어진 대추알, 풀모기에 발목을 뜯기며 그까짓 대추알을 호호 불며 줍는 어머니. 문종이처럼 얇은 그 뒷등을 볼 수 없을 어느 시월의 저녁.

이런 생각에 겁이 나면 시골집 대추나무하고 편먹고 싶어진다. 한편이 되어서 물어보고 싶어진다. 너도 겁나지, 대추야 대추나무야.
2026-10-05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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