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시금치를 한아름 주고 갔다. 여름비에 장차게 뻗대는 속도를 감당 못하니 뽑아다 먹으라 했다. 풀 한 포기 뽑아 주지 않고 남의 밭을 휘젓기는 염치 없는 일. 그랬더니 아침 이슬 깨기도 전에 휘뚜루마뚜루 뜯어서는 놓고 갔다.
시금치를 다듬는데 목을 뽑아올린 꽃대궁이 보인다. 그래, 너도 꽃이었지. 줄기인지 분간이 안 되는 푸른 꽃. 고단하게 피는 꽃을 나는 잊고 살았네.
시금치꽃을 빤히 보는데 마음이 일렁거린다. 데치면 한 움큼이고 마는 것이 무엇하러 꽃을 피우자고 안간힘을 썼을까. 붉지도 희지도 못해 푸른 꽃, 꽃같지도 않은 꽃을.
모퉁이 텃밭에도 땡볕 아래 나물 꽃들이 피었다. 부추 흰 꽃, 돌나물 노란 꽃, 취나물 흰 꽃, 쑥갓 노란 꽃. 푸른 우주 속에 작은 별들이 총총 떴다. 겨우 풋나물 주제에 왜 하나같이 잔별 모양으로 꽃들은 피는지.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는데 어째서 활짝 웃다가 가는지.
오래 보고 있으면 나는 너를 닮으려나. 부추 흰 꽃하고 나하고 백년해로 늙은 부부처럼 서로 보고 앉았다. 저하고 나하고 저녁 바람에 흔들리면서 오래 보고 앉았다.
황수정 논설실장
2026-08-19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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