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 낮은 신발부터 챙겨야지. 밑창이 없는 고무신이라면 좋겠지. 맨발이면 더 좋겠지.
봄비가 오지 않아도 미끈거리는 봄길. 세월아 네월아 봄달팽이가 새 풀을 헤집는 밭두렁이면 좋겠지. 우리 집 강아지 녀석을 앞세워야지. 손톱만 한 그 발바닥이 별 같은 발자국을 꼭꼭 찍으면 내 발자국으로 천천히 덮으면서 걸어야지. 아까운 봄풀 사이로 깨금발이 재미나 죽겠으면서 아닌 척 뒷짐을 지고 걸어 봐야지. 그러다가 미끄덩 봄 도랑에 엉덩방아를 찧고는 혼자 웃어야지.
신발 밑창에 봄흙을 잔뜩 묻혀 와야지. 돌아온 집 마당에 우물이 있으면. 말갛게 씻어 엎어 놓은 신발이 마르도록 발이 묶였으면. 마당에 쌓이는 봄볕만 보다가 해가 졌으면. 그랬으면 좋겠지. 정말 좋겠지.
높아지고 싶지도 않고 커지고 싶지도 않고 봄흙만 밟고도 하루를 놀 것 같은 봄날. 꿈꿀 일이 많아서 자도 자도 졸음이 밀려오는 게으른 봄저녁.
2024-04-01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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