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영 칼럼] 제주 해군기지와 고장난 대의민주주의

[구본영 칼럼] 제주 해군기지와 고장난 대의민주주의

구본영 기자
입력 2015-12-02 18:12
수정 2015-12-02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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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영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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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에 제주 강정 마을은 여전히 고즈넉했다.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까닭일까. 발파 작업으로 인한 굉음도,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던 단체들의 구호도 더는 들리지 않았다. 시위대들이 내건 빛바랜 깃발들만 저지 투쟁 때의 향수를 못 잊은 듯 나부끼고 있었다. 유치환 시인이 비유했던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처럼….

강정 민군(民軍)복합항의 공정률은 현재 94%(항만 96%, 지상 87%)로, 내년 1∼2월 준공식을 앞두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2007년 사업을 확정한 지 9년 만이다. 때마침 불어온 초겨울 삭풍에 너울이 일렁거렸지만, 30m 높이의 방파제 안 부두는 잔잔했다. 계류 중인 이지스 구축함 서애 류성룡함 갑판에서 커피를 담은 종이컵도 별로 흔들리지 않았다.

한 폭의 동양화 같은 해안과 ‘군사기지 없다 평화의 섬’이란 노란 깃발. 이 묘한 조합이 오래전 미국 하와이 방문 때의 기억을 불러냈다. 훌라춤을 추던 무희들로 인해 더 아름다웠던 와이키키 해변과 미 태평양함대의 모항 진주만의 ‘평화 공존’이 사뭇 인상적이었다. 하긴 관광선, 군함이 동거하는 항구가 이뿐이랴. 프랑스의 툴룽항과 일본 사세보항, 싱가포르 창이항이 그렇다. 세계 3대 미항에 드는 호주 시드니도 마찬가지다.

강정 해군기지는 처음부터 ‘민군복합 관광미항’을 지향했다. 방파제와 올레길이 연결된다니 관광미항으로서 잠재력은 충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더욱이 제주항에서는 불가능한 15만t급 크루즈선의 동시 접안도 가능하다지 않은가.

이제 제주 해군기지가 본격 가동되면 이어도나 남중국해 등 전략 요충지까지 우리 함정이 도달할 시간이 크게 줄어든다. 그렇다면 참여정부의 결단이 옳았다는 생각이다. 어쩌면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낸 노 전 대통령이 나름대로 앞을 내다본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수출입 물동량의 주통로인 남중국해에서 동남아 국가들과 미·일·중이 뒤엉킨 각축으로 격랑이 이는 것을 보면서 갖게 되는 소회다. 제주도가 ‘평화의 섬’이어야 하지만, 평화를 바란다면 만일의 전쟁도 각오하라는 경구도 있다.

그런데도 ‘민군’복합항의 한 축인 민항 기능은 언제 가동될지 기약이 없단다. 크루즈 터미널 준공이 전문 시위꾼들의 반대로 늦어지면서다. 물론 기지가 본격 가동될 경우 일자리와 관광객이 늘어나 연간 900억원의 생산유발 효과가 기대되면서 반대 목소리도 잦아들고는 있단다. 기지 내 매점 입찰을 타진하는 주민들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외지인 중심 시위꾼들로 인해 토박이 주민들이 혜택을 입을 기회를 놓치고 있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더군다나 공기가 2년째 늦어지는 바람에 정부가 건설업체에 물어 줘야 할 배상금만 해도 수백억원 규모다. 국민 혈세로 이를 메워야 할 판이다. 공사 현장에서 격렬한 시위를 벌이다 기소돼 재판을 받았거나, 진행 중인 사람들이 600명 선이란다. 주요 국책사업에 이런 낭비와 일부 주민의 희생이 따르는 것은 대의민주주의가 제 구실을 못 하고 있다는 뜻일 게다.

제주 해군기지는 ‘대양해군’을 기치로 참여정부가 결정한 사업이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자 이명박 정부 내내 한명숙 전 총리 등 상당수 친노 세력들이 깃발을 바꿔 들었다. 주로 반미(反美)·환경 근본주의적 시각을 가진 반대 단체들에 동조하면서다. 공사가 마무리 단계인 지금 반대 단체 인사들보다 그들 뒤 정치인들의 입장이 궁금하다. 이어도 해역 등에서 미국이 아닌 중국의 위협이 가시화되고, 공사장 인근 서귀포 앞바다의 연산호 군락은 그대로라는데 말이다.

해군은 공사 지연에 따른 손실과 관련, 반대 단체에 구상권을 행사할 계획이라고 한다. 당연지사이겠지만, 민군 상생의 취지가 바래지는 것 같아 얼마간 씁쓸하다. 갈등을 조정하긴커녕 외려 부추긴 정치권에 먼저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1987년 개헌으로 권위주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면 선진적 의회민주주의 정착이 가장 시급한 과제일 게다. 국책사업 때마다 피해를 보는 민초들이 생기기 않도록 국회가 모든 사회적 갈등을 제대로 수렴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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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mbnail - 이영남 서울시의원, 제기동역 1번 출입구 에스컬레이터 개통식 참석

논설고문
2015-12-0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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