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픽’한 장관 후보자
‘검증 패싱’ 하는 경우 많아
인사·민정수석실 상호 체크
노무현 인사시스템 복원해야
이번 개각의 후폭풍이 거세다. 인사로 국정 쇄신을 도모하려다 오히려 혹을 붙인 꼴이다.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에 이은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낙마로 결국 강훈식 청와대 비서실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청와대 인사 라인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지자 총대를 메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야권은 “인사 실패 꼬리 자르기”, “‘성남·경기라인’ 책임 은폐 카드가 돼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사실 공직사회에서는 오래전부터 “강 실장이 인사에 크게 관여하지 못한다”, “김현지 제1부속실장이 핵심이다”라는 말이 퍼져 있다.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인사에 민감한 공무원들 사이에 나도는 얘기다. 김 실장은 함부로 거론하면 안 되는 인물이라도 되는 듯 이니셜을 따서 ‘HJ’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러니 대통령 최측근 그룹의 인사 개입설이 흘러나오나 보다. 이번 인사 참사를 계기로 관가에서는 국제회의 참석차 미국 출장길에 오른 구윤철 전 경제부총리의 ‘공항 경질’ 등 전례없는 인사들도 다시 거론되고 있다.
이번 인사에서 뇌관이 됐던 법무장관직은 누구보다 투철한 준법의식과 높은 도덕성을 갖춰야 하기에 보다 정밀한 현미경 검증이 필요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법과 원칙의 엄정한 집행” 운운한다면 국민들로부터 “너나 잘하세요”라는 비웃음을 살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문재인 정권의 몰락을 촉발시킨 ‘조국 사태’의 트라우마가 떠오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과거 인사청문회도 없고, 인사검증 시스템이라는 말조차 거론되지 않던 시절에도 법무장관 후보자에 대한 의혹이 나오면 전광석화처럼 인사 조치가 이뤄졌다. 김영삼 정부 박희태 초대 법무부 장관은 장녀의 편법 대학 입학 논란이 일자 취임 10일 만에 자진사퇴했다. 김대중 정부 김태정 법무부 장관 역시 옷로비 의혹이 폭로되자 취임 15일 만에 전격 경질됐다. 법무장관직의 엄중함과 민심을 따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여동생 브로커’ 양모씨로부터 신약 임상시험 청탁 의혹을 받은 김 후보자의 자진 사퇴는 지명 20일 만에 이뤄졌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나오는 각종 의혹에 중도하차할 법도 했지만 성난 민심을 거스르다 성추행·폭언 추가 의혹까지 나오자 쫓기듯이 사퇴했다. “볼수록 잘된 인사”(김민석 대표), “후보자 보증한다”(서영교 법사위원장)는 더불어민주당의 후보자 호위무사 역할도 그의 버티기에 한몫했다.
사실 공식적인 인사 검증을 하지 않아도 도덕성과 업무 능력면에서 장관직을 수행할 만한 적격자인지는 후보자 본인이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한다. 김 후보자는 ‘셀프 검증’을 통해 스스로 장관직을 고사했어야 했지만 권력에 대한 유혹으로 자신은 패가망신하고 대통령에게는 정치적 부담을 안겼다.
그의 인사는 처음부터 잘못 끼워진 단추였다. 지명될 때부터 ‘공소취소용’이라는 의혹을 받았기에 더 엄격한 검증이 필요했다. 기소유예 사건을 더 내밀히 들여다보고, 여의도 세평만 제대로 챙겼어도 신약 임상시험 로비와 성추행 의혹 등은 어렵지 않게 걸러낼 수 있었을 것이다.
고위공직 인사는 인사수석실이 추천하고, 민정수석실이 검증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투명한 인사를 위해 서로 다른 수석실이 상호 체크하도록 ‘견제와 균형’ 시스템을 마련한 것이다. 말로만 노무현 정신 운운할 것이 아니라 그런 취지에 맞게 두 수석실에서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했다면 이런 사달은 없었을 것이다.
역대 정권을 보면 대통령이 ‘픽’한 후보자의 경우 인사 검증시스템 자체가 작동하지 않아 사실상 ‘검증 패싱’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형 인사 사고가 날 확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대통령이 마음먹고 장관 시키겠다는데, 누가 감히 검증의 칼을 들이대겠나.
현 정부에서 낙마한 장관 후보자 5명 중 강선우·용혜인·김승원 등 3명이 현역 의원이다. ‘현역 불패’ 관례에 따라 검증을 소홀히 했을 수도 있지만 공교롭게도 이들 모두 대통령이나 대통령 측근과 인연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관대한 검증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인사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제대로 운영하겠다는 대통령의 인사 철학과 의지다.
최광숙 대기자
최광숙 대기자
2026-09-23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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