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경제성, 시민의 삶 그리고 정치/김동현 전국부 차장

[마감 후] 경제성, 시민의 삶 그리고 정치/김동현 전국부 차장

김동현 기자
김동현 기자
입력 2023-08-29 00:06
수정 2023-08-29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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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전국부 차장
김동현 전국부 차장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대규모 투자 사업을 진행하기 전에 경제성을 따지는 사전 예비타당성조사제도를 만들었다. 당시 텅 빈 외환보유고를 채우기 위해 외화를 구걸하던 우리 정부에 국제통화기금(IMF)이 선심 쓰듯 달러를 던져 주며 내건 조건이기도 했다. 이 제도는 2006년 국가재정법을 만들면서 완성됐다. 지방정부 사업의 저승사자 ‘예타’가 탄생한 것이다.

25년이 지난 지금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며칠 전에는 서울시와 수도권 서북부 시민들이 10년 동안 바랐던 ‘신분당선 서북부 연장 사업’이 예타에서 떨어졌다. 기획재정부는 이 사업의 경제성 평가(BC) 점수로 0.36을 줬다. 한마디로 사업의 경제성이 형편없다고 본 것이다.

맞다. 경제성이 형편없는 사업에 재정당국이 도장을 꽝꽝 찍어 주면 후손들이 갚아야 할 빚이 늘어난다. 실제 의정부 경전철과 용인 경전철은 부족한 사업성으로 수천억원의 세금을 먹는 하마가 됐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세금 먹는 하마로 평가받는 이들 사업은 당시 예타를 모두 통과한 사업이다. 나라 곳간을 지킨다는 예타에 대한 신뢰가 순식간에 ‘금’이 가는 순간이다.

예타에서 탈락했던 사업의 현재를 보면 ‘금’은 ‘균열’이 된다. 2015년 개통된 호남고속철도는 개통 당시 하루 승객이 1만 6000여명이고, 지금은 표를 구하기 힘들 정도다. 한마디로 대박 노선이다. 지역균형발전이라는 국정 과제 달성이 덤으로 보일 정도다. 그런데 광주KTX는 예타 경제성 평가에서 0.36을 받아 추진해선 안 되는 사업으로 분류됐다.

수많은 사업에 대해 평가하다 보면 틀린 것도 나올 수 있다.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실수로 틀렸을까’ 하는 의심도 든다.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한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B·C 노선은 처음 예타에서 각각 0.33과 0.66의 낮은 경제성 평가를 받았지만, 일부 구간을 수정하더니 경제성이 있다고 결론 났다. 무슨 조화가 있었길래 사업성이 이렇게 획기적으로 좋아졌을까.

이 정도면 시민들 입장에선 예타가 의심스러울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의심’은 예타를 주관하는 기획재정부 2차관실의 고위 공무원들이 국회의원이 되고, 좋은 자리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확신’이 된다. 시민들은 예타가 정치화됐다고 본다.

문제는 정치권력의 칼자루는 국민이 쥐고 있지만, 예타의 칼자루는 기재부 고위 관료들이 쥐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의 영역이고 기술적인 부분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분명 통제되지 않는 권력으로 작동하고 있다.

신분당선 서북부 연장 사업이 예타에서 떨어진 뒤 해당 지역 시민들은 출퇴근길 지옥철과 꽉 막힌 도로 위에서 삶을 낭비해야 한다는 생각에 울분을 터뜨렸다. 대통령과 서울시장의 공약이었음에도 ‘특별한 관심을 받지 못한 탓’이라는 분노도 나온다. 서울시는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시민들의 눈빛은 싸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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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9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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