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쥐 3000마리 잡고 자기 팔에 주사”…크루즈선 공포가 소환한 한국인

“들쥐 3000마리 잡고 자기 팔에 주사”…크루즈선 공포가 소환한 한국인

김유민 기자
김유민 기자
입력 2026-05-09 09:33
수정 2026-05-09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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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괴질 7년 추적 끝 병원체 발견
연구진 7명 자기 몸으로 백신 실험 강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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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왕 고려대 의대 명예교수 2020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 서울신문 DB
이호왕 고려대 의대 명예교수 2020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 서울신문 DB


대서양 크루즈선에서 한타바이러스 집단 감염으로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세계 최초로 한타바이러스를 발견하고 백신까지 개발한 고(故) 이호왕 고려대 명예교수의 업적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한타바이러스’라는 이름은 경기 동두천 인근을 흐르는 한탄강에서 왔다. 한국 강 이름이 국제 의학 용어가 된 셈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이 박사 연구가 얼마나 큰 의미를 가졌는지 보여준다.

시작은 한국전쟁이었다. 1950년대 유엔군 병사 약 3200명이 고열과 신부전, 출혈 증상을 보이며 쓰러졌다. 당시 ‘유행성 출혈열’이라 불렸지만 원인은 알 수 없었다. 1·2차 세계대전 때도 군인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병이었지만, 수십 년 동안 정체불명의 괴질로 남아 있었다.

이 박사는 쥐가 병을 옮긴다는 가설을 세우고 직접 동두천 일대로 향했다. 연구원들은 군부대 인근에서 쥐를 잡다가 간첩으로 몰려 사살당할 뻔했고, 바이러스에 감염돼 생사의 갈림길에 서기도 했다.

연구를 포기하려는 이들도 있었다. 그때마다 이 박사는 “한번 감염되면 항체가 생겨 다시는 걸리지 않을 것”이라며 연구원들을 설득했다. 그는 치료비와 가족 생계도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했다. 그렇게 목숨 걸고 채집한 등줄쥐만 3000마리였다.

7년 뒤인 1976년, 이 박사는 한탄강 인근에서 잡은 등줄쥐의 폐 조직에서 병원체를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발견 지역 이름을 따 ‘한탄바이러스’라 이름 붙였고, 이후 관련 바이러스군 전체를 뜻하는 국제 학술용어 ‘한타바이러스(Hantavirus)’의 어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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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탄강 인근에서 등줄쥐를 채집하는 연구원. 고려대학교 의대 제공
한탄강 인근에서 등줄쥐를 채집하는 연구원. 고려대학교 의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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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보베르데 프라이아 항구에서 6일(현지시간)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한타바이러스 집단 감염이 발생한 크루즈선 MV 혼디우스호의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카보베르데 프라이아 항구에서 6일(현지시간)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한타바이러스 집단 감염이 발생한 크루즈선 MV 혼디우스호의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이 박사는 발견에서 멈추지 않았다. 1988년 말 예방 백신 개발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동물실험만으로는 부족했다. 효과를 입증하려면 결국 사람에게 직접 투여해야 했다.

이 박사를 포함한 연구진 7명은 자기 팔에 직접 백신 주사를 놓았다. 그렇게 1990년 출시된 ‘한타박스’는 대한민국 신약 1호가 됐다.

병원체 발견부터 진단법 개발, 백신 상용화까지 한 과학자가 모두 해낸 사례는 의학사에서도 드물다. ‘한국의 파스퇴르’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다. 그는 노벨 생리의학상 후보로 여러 차례 거론됐고, 미국 최고민간인공로훈장과 태국 프린스 마히돌상 등을 받으며 세계적으로도 업적을 인정받았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당시 한국 연봉의 400배 수준 조건으로 스카우트를 제안했지만, 이 박사는 이를 거절했다. 북한은 그를 겨냥한 세균전 비방 방송을 내보내기도 했다.

“과학자에게 우연은 성실한 사람과 노력하는 자에게만 오는 선물이다.” 이 박사가 제자들에게 자주 남겼다는 말이다.

제자인 송진원 교수 연구팀은 현재 한타바이러스 백신 개량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송 교수는 “기존 백신이 개발된 지 35년이 넘은 만큼 최신화 작업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지금도 국내 군인과 농업 종사자들은 이 박사가 만든 백신을 맞고 있다.
세줄 요약
  • 크루즈선 집단 감염으로 한타바이러스 재조명
  • 이호왕 교수, 세계 최초 발견과 백신 개발
  • 동두천 쥐 연구로 병원체 분리와 상용화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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