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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회, 칠보사 앞 주차장 공터로 추정 새달 서울시 문화재위원회 열어 검증
망명 전 대한매일신보에 이름·주소 적어
‘집문서 분실…휴지로 처리’ 광고 내보내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단재 신채호 선생이 1905년부터 1910년 중국 망명 직전까지 살았던 곳으로 추정되는 서울 종로구 삼청동 집터(삼청동 2-1). 현재 칠보사 앞 주자창으로 쓰이고 있다. 서울시는 이곳에 표지석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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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DB
중국 뤼순 감옥에 수감된 단재 선생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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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는 중국 망명 직전 주필로 있던 대한매일신보의 1910년 4월 19일자 3면에 ‘본인 소유 초가 6칸의 문권(文券·집문서)을 알지 못하는 가운데 분실하였기에 이에 광고하오니 쓸모없는 휴지로 처리하시오’라는 광고를 실었다. 광고 문안 뒤에 ‘경 북서 삼청동 이통사호 신채호 백’(京 北暑 三淸洞 二統四戶, 申采浩 白)이라고 자신의 주소와 이름을 적었다. 단재가 적시한 이 주소지는 현재 종로구 삼청동 2-1로, 중국 망명 이후 1912년까지 국유지였으나 그 이후 여러 사람의 소유를 거쳐 현재 한 불교재단법인이 소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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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선생이 주필로 있던 ‘대한매일신보’(현 서울신문)의 1910년 4월 19일자 3면에 실었던 삼청동 집문서 분실 광고. ‘본인 소유 초가 6칸의 문권(집문서)을 분실하였기에 이에 광고하오니 쓸모없는 휴지로 처리하시오. 경 북서 삼청동 이통사호 신채호 백’이라고 쓰여져 있다. 삼청동 이통사호는 현재 삼청동 2-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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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는 “단재의 삼청동 가옥터가 발견됐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다”면서 “단재 선생은 역사서 ‘조선상고사’를 통해 민족주의 사관을 정립하고 언론인으로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다가 중국 감옥에서 순국한 혁명적 독립운동가인데, 기념관은커녕 그를 기리는 표지석 하나 없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최광숙 선임기자 bori@seoul.co.kr
2019-02-2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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