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 “국가 배상 안해주면 누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 “국가 배상 안해주면 누가”

입력 2015-01-29 16:54
수정 2015-01-29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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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피해자는 업체와 조정 성립…영세업체 피해자는 구제받을 길 없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첫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패소함에 따라 이들이 국가로부터 배상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사실상 희박해졌다.

일부 피해자와 유족들은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들과 조정이 성립돼 소송을 취하하기도 했지만, 영세업체 제품에 피해를 본 이들은 국가마저 배상을 해주지 않으면 구제받을 길이 없다며 한숨짓고 있다.

◇ 가습기 살균제 피해 어떻게 시작됐나 = 4년 전인 2011년 4∼5월 서울시내 한 대학병원에 출산 전후의 20∼30대 산모 7명과 40대 남성 1명 등이 원인 모를 폐질환으로 입원했다. 이들 중 산모 4명이 사망하면서 그 원인으로 가습기 살균제가 지목됐다.

같은 해 8월 질병관리본부는 산모들의 폐손상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 때문일 수 있다는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했고 이어 환경보건시민센터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영유아 5명이 사망한 사례를 발표하며 전국적인 피해 사례 보고가 잇따랐다.

보건당국이 2012년 11월 구성해 지난해 3월까지 활동한 ‘폐손상 조사위원회’ 조사결과에 따르면 보건당국이나 시민단체에 신고가 접수된 361건 중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확실한 사례 127건, 가습기 살균제 피해일 가능성 큰 사례 41건 등 총 168건이 가습기 살균제와 관련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 사망에까지 이른 사례는 57건으로 조사됐다.

특히 사망자 중에는 소량의 유해성분에도 취약한 영·유아들이 다수 포함돼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후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성분 조사가 이뤄져 당시 시중 제품에 포함돼 있던 CMIT/MIT와 PHMG, PGH 등이 2013년 유독물로 지정됐다. 바꿔 말하면 이전까지는 이 물질을 사용하는 제품들의 유해성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으며 국가가 이 제품의 안전성을 관리·감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유족 150여명은 이런 유독 성분을 쓴 제조업체들뿐 아니라 국가를 상대로 잇따라 소송을 냈다.

◇ 국가 상대 소송 패소…유족들 반발 = 피해자들이 낸 8건의 소송 중 첫 번째 소송에서 법원은 유족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3부(심우용 부장판사)는 29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유족 박모씨 등 4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가습기 살균제에 일부 유해한 화학물질이 사용됐다 해도 국가가 이를 미리 알았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고 당시 법규에 따르면 관련 화학물질이나 제품에 대한 관리를 소홀히 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유해물질의 정의나 기준이 유동적이고 그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고 있으므로 그 당시의 구체적인 상황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고, 나중에 국가의 조치가 적정하지 못한 것으로 판명됐다고 해서 국가의 고의나 과실을 위법하다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피해자와 가족들은 첫 소송 결과가 나오자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은 이날 성명서를 내고 “1심 판결 결과를 수용하기 어렵다. 유해독성이 확인된 독성물질을 기업이 마음대로 사용했는데도 정부나 기업이 이를 몰랐다고 하면 되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 옥시 등 대기업 조정 나서…영세업체는 구제방법 없어 = 가습기 살균제 업체들 중 외국계 업체인 옥시레킷벤키저는 피해자들과 소송 조정에 적극적으로 나서 일부 소송을 매듭짓기도 했다. 민사소송에서 조정이란 소송의 양 당사자가 피해에 대한 배상 차원의 합의금을 정해 분쟁을 해결하는 방식이다.

이번에 판결이 난 소송의 경우에도 원고 6명 중 2명이 살균제 업체인 옥시레킷벤키저 측과 지난해 8월 조정이 성립된 뒤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빠졌다.

다른 소송 한 건도 이달 19일 옥시 측과 조정이 성립되면서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도 취하했다.

이들의 조정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한 사망자의 부모는 도합 2억5천만원을 배상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옥시는 다국적기업으로서 이미지 등을 고려한 때문인지 2013년 11월 50억원 규모의 피해자 지원 기금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 이들 제품 피해자들의 경우는 구제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커보인다.

그러나 영세업체 제품의 경우에는 국가 상대 소송에서 패소할 경우 피해를 구제받을 길이 없는 형편이다.

이번에 패소 판결을 받은 유족들의 경우에도 폐질환으로 숨진 아이들이 ‘세퓨’ 제품을 써 피해를 봤다. 이 업체는 영세하게 운영되다 폐업한 상태여서 소송을 내봤자 배상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피해자모임은 전했다.

이들의 피해를 구제하는 방안으로 정치권에서 논의된 특별법 역시 발의된 뒤 국회에서 아직 계류 중이고 정부는 소관 부처를 놓고 다투다 피해자들의 의료비와 장례비를 일부 지원하는 데 그쳤다.

피해자 모임은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이 한 가닥 희망이었는데, 이마저도 패소하게 돼 암담하다”며 “앞으로 소송을 이어가면서 정부와 시민사회가 포괄적인 구제 방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계속 싸울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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