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 ‘최장수 외교 수장’ 박동진 전 외무장관 별세

[부고] ‘최장수 외교 수장’ 박동진 전 외무장관 별세

입력 2013-11-12 00:00
수정 2013-11-12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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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9개월간 재직… 한국 외교 격동기 진두지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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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진 전 외무부 장관 연합뉴스
박동진 전 외무부 장관
연합뉴스
우리나라 최장수 외교 수장이었던 박동진 전 외무부 장관이 11일 별세했다. 91세.

박 전 장관은 대구고등보통학교, 일본 주오대를 졸업한 후 1948년부터 이승만 대통령 비서실 등에서 근무했다. 1951년 외무부에 입부 후 의전국장, 차관, 주월남 초대 대사와 주브라질·주제네바·주유엔 대사 등을 거쳐 11~12대 국회의원, 국토통일원 장관, 주미대사, 한국전력공사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1975년 12월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외무부 장관으로 발탁된 후 1980년 9월까지 4년 9개월 동안 재직했다. 1979년 10·26 사건과 신군부의 12·12 쿠데타,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때 현직 장관으로 대미 관계를 진두지휘했다.

이 기간에 한국 외교는 격동기였다. 1976년 10월 재미 한국인 사업가 박동선씨가 미 의회 의원들을 상대로 매수 공작을 벌인 이른바 ‘코리아 게이트’가 불거졌을 때 한·미 갈등을 수습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주미 대사관에 근무했던 중앙정보부 소속 김상근 참사관이 미국으로 망명, 한국 정부가 미 정치인과 언론인, 학자 등을 포섭하기 위한 ‘백설작전’을 벌였다는 폭로 사태를 무마하느라 곤욕을 치렀다.

박 전 장관은 도덕주의를 표방한 미 지미 카터 행정부와 유신체제 간의 반목으로 불편했던 한·미 관계를 조율하는 데 기여했다. 정부는 그에게 수교훈장 광화장·흥인장, 청조근정훈장을 수여했다. 2010년 비밀해제된 미 국무부 외교전문에 따르면 박 전 장관은 1979년 10·26 사건 후 권력을 승계한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해 “소극적 인물”이라는 평가를 미국에 전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유족에는 현민(玄民) 유진오 선생의 딸인 유충숙씨와 1남3녀가 있다. 장례는 외교부장(葬)으로 치러지며 서울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빈소는 서울 아산병원, 발인은 14일 오전 8시.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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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2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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