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관이 무겁다는 솔직함… 새로운 매력의 ‘맥베스’

왕관이 무겁다는 솔직함… 새로운 매력의 ‘맥베스’

류재민 기자
류재민 기자
입력 2023-12-30 06:58
수정 2023-12-30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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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맥베스’는 맥버니(왼쪽)와 맥베스가 함께 권력을 위해 피의 역사를 쓰는 이야기를 담았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뮤지컬 ‘맥베스’는 맥버니(왼쪽)와 맥베스가 함께 권력을 위해 피의 역사를 쓰는 이야기를 담았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셰익스피어는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헨리 4세’ 중)라고 했지만 정작 왕관을 쓴 맥베스 부부는 “왕관은 왜 이리 무겁고 난리야 까딱 잘못하면 목 부러지겠다”고 불평한다. 망토도 장갑도 다 갑갑하고 휘장, 요대, 각반 등도 거추장스러울 뿐. 원작의 무게를 말 몇 마디로 순식간에 덜어내는 과정이 마치 마법의 다이어트약을 먹은 것 같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란 이유로 ‘맥베스’는 꽤 오랫동안 무거운 작품이었다. 인간이 야망 때문에 무너지는 이야기라 굉장히 비극적이어야만 할 것 같고 엄숙함도 같이 곁들여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있다. 실제로 수백 년간 수많은 연극이 그랬고 오페라도 그랬다.

30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마지막 공연을 앞둔 서울시뮤지컬단의 ‘맥베스’는 결이 다르다. 21세기 한국에서 보면 한없이 머나멀게 느껴지는 11세기 스코틀랜드 왕족의 권력다툼을 현대적으로 각색했다. 마녀를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곧 작품의 역사였지만 초자연적인 요소인 마녀를 과감하게 생략해버렸고, 맥베스의 아내 레이디 맥베스에게 맥버니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고 능동적인 여성으로 그려내는 등 곳곳에서 요즘 스타일이 드러난다.

연극이나 오페라에서 관계가 장황하게 얽히고 얽히는 이야기를 핵심만 압축해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면서 관객들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게 했다. 김은성 작가가 “2시간 이내의 짧은 대본으로 압축하기 위해 원작의 촘촘한 장면들과 아름다운 대사들을 거침없이 도려내고 과감하게 잘라내야 했다”고 말한 대로 맥베스가 맥버니와 함께 왕위를 빼앗고 그것을 지키려고 피의 복수가 반복돼 서서히 파멸해가는 서사가 군더더기 없이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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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베스’는 욕망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장소로서 검투장을 무대디자인으로 선보였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맥베스’는 욕망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장소로서 검투장을 무대디자인으로 선보였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원작의 어둡고 무거운 정서를 덜어냈지만 피로 시작해 피로 끝나는 영원한 비극성은 유지했다. 초현실적인 마녀의 존재를 지운 덕에 작품의 핵심 감정인 인간의 야망이 더 극대화된 것도 돋보였다. 권력에 눈이 멀어 죽고 또 죽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움에 시달리는 이중적인 본성이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킨 덕에 캐릭터도 입체적으로 살아났다.

다만 원작 자체가 워낙 무게감 있는 이야기다 보니 작품을 조금이라도 아는 관객들에게는 낯설게 다가올 수 있다. 원작을 변형할 때는 결국 흐름을 어떻게 설득력 있게 끌고 갈지가 중요한데 멜로디를 붙여야 하는 뮤지컬의 특성상 분위기가 조금 들쭉날쭉할 때가 있었던 점은 여러 매체를 통해 아쉬움으로 지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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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조윤지 연출이 “셰익스피어 작품의 무게감을 덜고 지루하지 않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고 말한 대로 직관적이고 속도감 있는 전개는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작품으로 다가가게 했다. 무엇보다 싸움도 잘하고 남편보다 더 심성이 강인한 맥버니는 작품 제목을 ‘맥베스’가 아니라 ‘맥버니’로 해도 될 정도의 존재감을 뽐내며 새로운 여주인공의 탄생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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