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출생자 자동시민권 안돼’ 트럼프 공약에 공화 ‘내분’

‘美출생자 자동시민권 안돼’ 트럼프 공약에 공화 ‘내분’

입력 2015-08-23 11:28
수정 2015-08-23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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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시민권 속지주의 제동’에 공화 대선주자들 찬반 엇갈려불법이민 외에 원정출산도 불똥…현실적으로 폐지 어려워

미국 대선 초반을 주도하고 있는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던진 또 하나의 화두가 17명이 운집한 공화당 대권주자들 사이에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발표한 트럼프의 이민제도 개혁 공약에 포함된 ‘출생 시민권’(birthright citizenship) 폐지론이 요즘 미국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가 됐다.

출생 시민권이란 미국 영토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자동으로 시민권을 주는 제도로 ‘속지주의’ 원칙을 명시한 수정헌법 14조를 근거로 한다.

트럼프의 막말까지 퍼부으며 공을 들이는 불법이민자 차단책의 일환이지만 상당수 경쟁 후보들이 공감을 표시하면서 순식간에 주요 의제로 떠올랐다.

23일 CNN방송, 워싱턴포스트(WP), 뉴욕타임스(NYT), AP통신 등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대선 출마를 선언한 공화당 후보 절반 이상이 트럼프에게 동조하고 나섰다.

테드 크루즈(텍사스) 상원의원은 지난 19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불법 체류자들의 자식에게 자동으로 시민권을 허용하는 것을 끝내야 한다”며 “이는 내가 상원의원에 처음 출마할 때부터의 소신”이라고 말했다.

스콧 워커 위스콘신 주지사도 최근 방송 인터뷰에서 출생 시민권 폐지에 동의하느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답한 뒤 “나의 이민정책은 트럼프와 매우 비슷하다”고 밝혔다.

릭 샌토럼 전 펜실베이니아 상원의원은 20일 연설에서 “우리가 불법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주는 자동 시민권의 종결을 제안한다”면서 “불법 이민은 가족을 먹여살리겠다고 은행을 터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맹비난했다.

심지어 인도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바비 진달 루이지애나 주지사마저 트위터를 통해 “불법 이민자에 대한 출생 시민권에 종지부를 찍을 필요가 있다”며 트럼프의 손을 들어줬다.

이들 외에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와 신경외과 전문의 출신인 벤 카슨도 출생 시민권 재검토를 촉구하고 있다.

트럼프와 앙숙이면서도 출생 시민권에는 부정적 견해를 나타낸 린지 그레이엄(사우스캐롤라이나) 상원의원과 최근엔 언급을 삼가고 있으나 과거 반대 의사를 표명했던 랜드 폴(켄터키) 상원의원까지 합치면 공화당 후보 중 9명이 폐지론자다.

물론 반대파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정권 탈환을 위해 선거의 캐스팅보트를 쥔 히스패닉 유권자들을 끌어안아야 한다고 믿는 공화당 주류 인사들은 시민권 논란으로 히스패닉계가 당으로부터 더욱 등을 돌리게 될까봐 우려하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당의 유력 주자로 꼽히는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는 “출생 시민권은 헌법상 권리”라면서 “우리는 헌법이 부여한 권리를 박탈하기보다는 문제를 고치는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트럼프에게 일침을 놨다.

멕시코 출신 아내와 결혼한 부시 전 주지사는 주로 멕시코 등 중남미로부터 건너온 불법이민자들의 신분을 합법화하는 데에도 긍정적인 입장이다.

쿠바 이민자 2세로 선전을 펼치고 있는 마르코 루비오(플로리다) 상원의원은 지난 18일 아이오와 주 유세에서 기자들과 만나 “수정헌법 14조를 이용하려는 목적으로 고의로 미국에 오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 뭔가 해야 하지만 출생 시민권 자체를 폐지하는 데에는 찬성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존 케이식 오하이오 주지사는 “출생 시민권을 둘러싼 논란은 당의 ‘장애물’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미국에서 태어난 누구라도 자동으로 미국 시민이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6일 첫 TV토론을 통해 ‘메이저 후보’로 발돋움한 칼리 피오리나 전 휼렛패커드(HP) 최고경영자 역시 트럼프의 주장에 부정적인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와 같은 출생 시민권 문제는 멕시코 등 주변의 ‘불법이민자 수출국’을 주로 겨냥한 발상이지만, 결국 폐지될 경우 이들뿐만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원정출산 희망자들에게도 불똥이 튈 수 있어 더욱 주목된다.

미 이민연구센터(CIS)의 올해 봄 연구결과에 따르면 매년 3만6천 명의 원정출산 여성이 미국에서 아이를 낳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보수층은 이런 원정출산을 ‘출생 여행’(birth tourism)이라고 부르며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그렇지만 트럼프를 비롯한 폐지론자가 만약 내년 대선에서 승리하더라도 까다로운 절차 탓에 정말로 제도를 없애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으로 전망된다.

헌법을 바꾸려면 상·하원에서 각각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고 전체 주(州)의 4분의 3 이상이 승인하거나, 아니면 전체 주의 3분의 2 이상의 요구로 개헌협의회를 소집해 수정안을 만든 뒤 4분의 3 이상의 주가 승인해야 한다고 WP는 보도했다.

따라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현 의회 구성대로라면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 13명, 하원의원 44명을 각각 설득하고 공화당에서 장악하지 못한 주 가운데 5개를 자기편으로 끌어와야만 개헌을 추진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개헌 대신 법 개정만으로 충분히 불법이민자들에 대한 출생 시민권 자동 부여를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지만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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