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과 청와대 뒤로 북악산이 솟아 있다. 높이 342m. 한양도성의 성벽이 능선을 따라 이어지고 북대문인 숙정문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 문을 평소 닫아 두다가 가뭄이 들면 열었다. 대신 남대문인 숭례문을 닫았다. 북쪽이 물을 상징하니 문을 열어 비를 부른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태종 때는 경복궁의 풍수를 지킨다며 북악산 양쪽 고갯길을 막고 소나무까지 심어 사람들의 통행을 금했다.
북악산이 철책과 경계초소로 둘러싸인 것은 1968년 1·21사태 이후다. 김신조 등 북한 무장공작원 31명이 박정희 대통령 암살을 노리고 청와대 코앞까지 침투했다. 북악산과 인왕산 일대는 일반인 출입이 통제됐다. 당시 군경과 무장 공작원들의 교전에서 총탄 15발을 맞은 소나무가 지금도 북악산에 남아 있다.
북악산의 빗장이 처음 풀린 것은 노무현 정부 때였다. 노 전 대통령은 북악산의 경치를 혼자 누리는 게 처음에는 특권처럼 느껴졌지만 시간이 갈수록 시민들에게 미안해졌다고 했다. 경호를 맡은 군부대와 문화재청 등에 개방을 요청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2006년 2월 노 전 대통령 부부는 시민들과 산길을 함께 걸었고, 그해 4월 숙정문 일대가 처음 개방됐다. 이듬해에는 성곽길까지 열렸다. 다만 당시에는 정해진 시간에 단체로만 탐방할 수 있었다. 이후 2020년 북측 탐방로, 2022년 청와대 뒤편 남측 탐방로가 차례로 열렸다.
오는 17일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북악산 남서쪽 청운동 방면 탐방로 1.32㎞가 개방된다. 기존 군 수색로를 활용해 조성한 길이다. 대통령 경호처는 59년 동안 출입이 제한됐던 마지막 구간을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의미를 부여했다.
새로 열리는 산길 주변에는 ‘무릉폭’(武陵瀑)과 ‘도화동천’(挑花洞天)이라는 바위글씨가 남아 있다. 옛사람들이 이 계곡을 얼마나 아름답게 여겼는지 짐작하게 한다. 한때 철책 너머에 있던 그 풍경을 이제 시민들이 직접 찾아갈 수 있다. 북악산의 마지막 빗장이 풀린다.
2026-10-14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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