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가족돌봄 휴가/최광숙 논설위원

[씨줄날줄] 가족돌봄 휴가/최광숙 논설위원

최광숙 기자
최광숙 기자
입력 2018-02-08 23:06
수정 2018-02-09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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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퇴임 후 비행기를 탔을 때의 일이다. 한 승무원이 “암과 치매를 앓던 부모님의 마지막 며칠을 돌볼 사람은 자신과 언니밖에 없었다. 가족의료휴가법이 없었다면 곤란했을 것”이라고 클린턴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클린턴은 자신이 서명한 법안 중에서 가장 얘기를 많이 들은 법안이 바로 ‘가족의료휴가법’이라고 했다.
1993년 제정된 이 법안은 아이가 태어나거나 가족이 아플 때 최고 12주의 휴가를 보장하는 내용이다. 클린턴은 자서전 ‘마이 라이프’에서 “전임자인 부시 대통령은 이 법안이 기업에 부담을 준다는 이유로 거부권을 두 번이나 행사했지만 아기나 병든 부모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생산성을 발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법안은 선거 관련 공약으로 의회를 통과해 그가 처음으로 서명한 ‘1호 법안’이다.

미국은 선진국이면서도 유급 출산휴가를 보장하지 않는 ‘복지 후진국’이다. 이 법에 따르면 출산휴가의 경우 직원 50인 이상 기업에 근무하는 경우에 한해 12주까지 허용한다. 그마저도 무급이다. 일부 지자체에서 개별적으로 유급 출산휴가를 도입할 뿐이다. 우리와 달리 기업들은 장례휴가를 줄 의무도 없다.

페이스북이 지난해 유급 육아휴직제도 도입(4개월)과 유급 장례휴가 기간을 대폭 늘려 미국인들의 부러움을 샀던 것도 미국의 야박한 휴가제도에 기인한다. ‘복지천국’ 페이스북은 남편을 갑작스레 잃은 페이스북의 셰릴 샌드버그 최고운영책임자의 “사람들은 일을 하면서 가족과 함께 있을 수 있어야 한다. 가족과 일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해서는 안 된다”는 철학 덕분이다.

가끔 고위 공직자들 가운데 아픈 가족을 뒤로하고 나랏일을 우선했다는 것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가 되곤 한다. ‘선공후사’(先公後私) 정신은 칭찬받을 일이지만 중차대한 일이 아니라면 이제 공직자에게 무조건 희생을 요구하는 시대는 지났다. 조 바이든 전 미국 부통령은 뇌종양으로 투병 중이던 아들과 함께 있으려고 워싱턴을 떠나기도 했지만 어느 누구도 시비를 걸지 않았다.

앞으로 자녀들을 돌보기 위해 연간 10일을 휴가로 쓸 수 있는 ‘자녀돌봄 휴가’ 제도가 신설된다. 가족의 질병·사고·노령을 이유로 연간 30~90일간 휴직할 수 있는 가족돌봄 휴직제도에 자녀 양육도 포함해 자녀돌봄 휴가를 추가한 것이다. 돌봄의 대상에 부모들도 넣었으면 한다. 고령화 시대에 아픈 부모들을 모시고 병원 가거나 간병을 위한 휴가가 있다면 금상첨화 아닐까. 이름하여 ‘가족돌봄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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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2018-02-09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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