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대통령의 ‘전화정치’/최광숙 논설위원

[씨줄날줄] 대통령의 ‘전화정치’/최광숙 논설위원

입력 2013-08-26 00:00
수정 2013-08-26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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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임금 정조는 정치 돌아가는 상황에 늘 신경을 썼다. 정조가 벽파의 거두인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御札·임금의 편지)을 묶은 ‘정조어찰첩’은 그런 정조의 물밑 정치 속살을 보여 준다. 정조가 1796년 8월부터 숨지기 직전인 1800년 6월까지 약 4년간 쓴 297점의 편지에 ‘민감한 정치 현안의 처리와 자문’은 물론 ‘인사 문제’, ‘중앙 정계와 산림의 여론과 동향 탐색’ 등이 들어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과거 정조가 ‘편지 정치’를 했다면 오늘날의 대통령들은 ‘전화 정치’를 한다. 바쁜 국정 일정과 경호 등을 감안하면 일일이 사람들을 만나기 어렵다 보니 전화 통화로 만날 사람을 대신하게 마련이다. 대통령의 경우 관련 수석과 장관들의 공식 보고 외에도 정보기관의 보고를 통해 민심의 동향을 파악한다.

하지만 정보기관의 보고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민심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전화 정치’을 택한 것도 그 때문이다. 김 전 대통령은 청와대 입성 시 야당 시절부터 인연을 맺은 사람들의 전화번호를 적은 두꺼운 노트 한 권을 챙겨 갔다. 민감한 국정 현안이 생길 때마다 일과 후에 관저에서 김기수 전 수행실장과 함께 노트를 뒤적이며 전국의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민심을 읽었다고 한다.

우리만이 아니다.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의회의 협조를 구할 일이 생기면 1주일에 수십 통씩 여야 의원들에게 ‘전화 정치’를 펼쳤다. 취임 6개월을 맞은 박근혜 대통령의 그간 국정 스타일은 ‘전화 정치’라고 한 언론이 보도했다. 박 대통령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청와대 수석과 장관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현안을 챙긴다는 것이다. 잘하는 일이다. 전화로도 꼼꼼하게 국정 현안을 챙긴다면 청와대 비서진과 장관들은 더욱 긴장하며 업무에 집중할 것이다.

하지만 전화 통화의 한계를 생각한다면 장관이든 정치인이든 누구든 직접 회동을 더 많이 가졌으면 한다. 과거 김영삼 대통령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황명수 신한국당 사무총장이 깜짝 놀라 “네, 각하” 하며 벌떡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는 얘기는 정치권의 유명한 일화다. 이렇듯 아랫사람이 대통령의 전화를 받으면 ‘감읍’하기 일쑤다. 그러니 전화기에 대고 대통령의 의견에 ‘아니다’라고 하기 어렵다.

시간이 촉박하다면야 몰라도 때로는 직접 마주 앉아 눈빛을 교환하고, 말의 행간을 읽고, 상대방의 진짜 의중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폰십’보다 체온과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스킨십’이 더 진정한 소통임을 누구나 다 안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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