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계급투표/우석대 역사교육과 명예교수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계급투표/우석대 역사교육과 명예교수

입력 2021-12-28 17:26
수정 2021-12-29 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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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례 2005. 이 개구쟁이들은 지금 어엿한 20대 청년이겠지.
삼례 2005. 이 개구쟁이들은 지금 어엿한 20대 청년이겠지.
1900년대 초 영국의 집권당이던 보수당은 몇몇 부문에서 개혁 성과를 올렸지만, 엄청난 소득 불평등, 하층민 빈곤 등의 문제를 방치했다. 그 결과 1906년 1월 선거에서 영국 자유당은 유례없는 승리를 거둔다. 보수당이 157석, 자유당이 377석을 얻었다. 이 선거로 17년간의 보수당 지배가 끝났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1837~1901)에는 가난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풍조가 일반적이었고, 보수당 정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새로 집권한 자유당은 사회적 평등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국가가 실업·보건·주택·교육 등의 문제에 개입해 공정한 분배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새로운 흐름을 ‘신자유주의’로 불렀는데, 1970년대 시카고학파의 ‘신자유주의’와 이름은 같지만, 방향은 정반대다.

그 결과 1908년 노령연금법안 등이 실행돼 영국 사회보장제도의 신기원을 이루었다. 그러나 개혁은 급격한 재정 확대를 가져왔고, 늘어난 재정 수요에 대처하기 위해 1909년 혁명적이라 할 만한 대규모 예산을 의회에 상정했다. ‘인민 예산’이라 불린 이 예산안의 부담은 대부분 부유층에 돌아갔다. 보수당은 ‘이건 예산이 아니라 혁명’이라며 반발했다. 가까스로 하원을 통과한 예산안은 상원에서 걸렸다. 상원 귀족들이 이 예산안을 ‘부자들의 피를 빨아먹는 짓’이라고 비난하면서 350대75로 부결시킨 것.

자유당은 즉각 의회를 해산하고 국민에게 심판을 맡겼다. 1910년 1월 총선거에서 자유당이 승리는 했지만, 보수당보다 겨우 2석 많은 274석이었다. ‘신자유주의’는 노동자에게는 환영받았지만, 중간계급을 자유당에서 이탈시켰다. 1906년 선거는 ‘비국교도=자유당’, ‘국교도=보수당’으로 ‘종교’가 좌우했지만, 1910년 선거는 ‘계급’이 주된 동력이었다. 과거 비국교도라는 이유로 자유당을 지지했던 중간계급이 이번엔 보수당을 택했다.

중간계급의 노동자 외면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하층민과의 연대를 저버린 배신 행위라는 평가도 가능하다. 그러나 ‘진영·이념’이 ‘종교’처럼 영향력을 발휘하는 한국의 낡은 풍토에서는 ‘계급 이익’을 주된 동력으로 삼았던 20세기 초의 영국 정치가 오히려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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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는 진영·이념에 매몰되지 않고, 계급 이익을 위한 실리적 투표 성향이 뚜렷하다고 한다. 바람직한 방향이다.
2021-12-2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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