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영화 감상의 민족주의와 문화사대주의/박록삼 문화부 차장

[데스크 시각] 영화 감상의 민족주의와 문화사대주의/박록삼 문화부 차장

박록삼 기자
입력 2015-04-27 18:10
수정 2015-04-28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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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록삼 논설위원
박록삼 논설위원
영화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어벤져스2)은 지난 23일 개봉하자마자 전국 극장 매출 점유율 92.6%를 차지했다. 스크린 개수는 1843개까지 치솟았고 상영 횟수는 하루 1만회를 웃돌았다. 역대 최고 기록이다. 개봉 4일 만에 기록한 300억원의 매출액은 북미보다 한 주 앞서 개봉한 44개 국가 중 최고였다. 한국 영화시장의 높은 위상을 새삼 증명했다. 한국에서 현지 촬영했다는 사실이 폭발적 관심의 결정적 배경이다. 맞다. 그냥 영화도 그럴진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모습이 나온다니….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지난해 4월 서울 도심 곳곳을 가로막고 촬영을 진행할 때도 시민들은 불평을 터뜨리지 않고 기꺼이 구름 같은 구경 인파를 자처했다. 서울시장은 촬영 일정과 장소 등을 트위터에 올리며 자랑스러워했고, 한국 정부는 2조원 경제 효과를 운운하며 ‘어벤져스2’의 한국 제작비용 120억원 중 39억원을 환급해 줬다. 한국의 민관이 합심해 적극 성원한 셈이다.

기대가 너무도 컸던 탓일까. 개봉 이후 찬사만큼이나 비판이 줄을 이었다. ‘한국인 과학자 분량이 너무 적다’, ‘이것 보여 주려고 그렇게 유난을 떨며 찍었나’, ‘서울 하늘이 너무 우중충해 보인다’ 등 실망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기대를 품었던 기준도, 비판을 쏟는 기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문화사대주의와 민족주의의 경계선상 어디쯤이다.

기실 영화는 오롯이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근대 산업화 속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탄생했고, 창작과 유통, 공유의 과정과 배경에 자본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골방에서 혼자만의 일기를 쓰듯 시(詩)를 쓰거나, 제 흥에 겨워 노래를 부르는 이는 있어도 혼자만 보기 위해 영화를 제작하는 이는 없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돈의 논리’가 핵심이다. 민족주의, 혹은 문화적 사대주의와 같은 정서적 가치가 개입될 여지는 별로 없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한다. 영화는 그 자체로 살아 있는 유기체다.

세계적 석학인 베네딕트 앤더슨(93) 미국 코넬대 명예교수는 민족주의를 ‘상상의 공동체’로 규정했다. 근대국가가 만들어진 과정 속에서 집단의 구성원들끼리 서로 운명공동체라고 믿을 뿐이라는 얘기다. 그의 말은 최소한 한국 사회가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다.

올해 아카데미상을 휩쓴 영화 ‘버드맨’ 속 대사 ‘××김치 냄새’에 부르르 떠는 언론들이 있었고, 심형래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작 ‘디워’를 ‘닥치고 보라’는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반면 미국의 B급 코미디 영화 ‘인터뷰’에 대한 반응은 어땠나.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암살하는 내용에 대해 발끈하는 북한을 보고 ‘영화를 영화로 보지 못한다’며 그 수준 낮음을 비웃었다. 과거 전례가 말해 주듯 ‘어벤져스2’의 극단적으로 갈린 호불호의 이면에는 이미 우리 내부의 모순이 똬리 틀고 있었다.

모를 일이지만 부정적 논란은 그 논란대로 흥행에 도움이 될 것이다. 영화시장이 불쑥 커진 것을 마냥 기뻐하기에는 그늘에서 내뱉는 신음이 너무 크다. ‘약장수’, ‘차이나타운’을 만든 국내 영화인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훗날을 기약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처럼 ‘어벤져스2’에 마뜩지 않은 이들의 입장도 민족주의적 접근으로 해석될 수 있으니 참으로 넓고 깊은 민족주의거나 문화사대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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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tan@seoul.co.kr
2015-04-2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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