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아버지를 위한 대답들

[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아버지를 위한 대답들

입력 2016-10-19 23:24
수정 2016-10-20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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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최근에 작고한 시인의 작품을 꺼내 보련다. 미국의 계관시인(미국은 의회도서관이 해마다 미국을 대표하는 시인을 지명한다)이었던 마크 스트랜드(1934~2014)가 1978년에 발표한 ‘나의 아버지에게 바치는 비가(悲歌)’(Elegy for My Father)라는 아주 긴 시인데, 일부만 여기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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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종만 기자
길종만 기자
1. 빈 육체

손은 당신의 손이고, 팔도 당신의 팔인데,

당신은 거기에 없었다.

당신의 눈이지만, 닫혀서 눈이 떠지지 않았지.

…(중략)…

2. 대답들

당신은 왜 여행을 하셨나요?

집이 추웠기 때문이지.

당신은 왜 여행을 하셨나요?

하루해가 지고 다시 해가 뜨기까지 내가 언제나 해온 일이었으니까.

당신은 어떤 옷을 입었나요?

남색 양복, 하얀 셔츠, 노란색 타이, 그리고 노란색 양말.

당신은 어떤 옷을 입었나요?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어. 고통의 스카프가 나를 따뜻하게 해줬지.

누구랑 잤나요?

매일 밤 다른 여자와 잤지.

누구랑 잤나요?

나 혼자 잤어. 난 언제나 혼자 잤지.

왜 내게 거짓말을 했나요?

난 내가 항상 진실을 말한다고 생각했어.

왜 내게 거짓말을 했나요?

진실도 아무렇지도 않게 속일 때가 있으니까 그런데 난 진실을 사랑해.

왜 떠나려고 해요?

이제는 어떤 것도 내게 그다지 의미가 없으니까.

왜 떠나려고 해요?

나도 모르겠어. 왜 가려는지 나도 알지 못했지.

얼마나 오래 제가 당신을 기다려야 하나요?

나를 기다리지 마라. 피곤해서 그만 눕고 싶구나.

피곤해서 쉬고 싶은가요?

그래, 난 지쳤어 그래서 쉬고 싶어.

…(후략)

1. THE EMPTY BODY

The hands were yours, the arms were yours,

But you were not there.

The eyes were yours, but they were closed and would not open.

……

2. ANSWERS

Why did you travel?

Because the house was cold.

Why did you travel?

Because it is what I have always done between sunset and sunrise.

What did you wear?

I wore a blue suit, a white shirt, yellow tie, and yellow socks.

What did you wear?

I wore nothing. A scarf of pain kept me warm.

Who did you sleep with?

I slept with a different woman each night.

Who did you sleep with?

I slept alone. I have always slept alone.

Why did you lie to me?

I always thought I told the truth.

Why did you lie to me?

Because the truth lies like nothing else and I love the truth.

Why are you going?

Because nothing means much to me anymore.

Why are you going?

I don‘t know. I have never known.

How long shall I wait for you?

Do not wait for me. I am tired and I want to lie down.

Are you tired and do you want to lie down?

Yes, I am tired and I want to lie dow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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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시인
최영미 시인
몸은 당신의 몸인데, 그러나 당신은 거기에 없었다.

입관하며 내가 마지막으로 본 당신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내가 재작년에 아버지를 여의지 않았다면, 이 시에 지금처럼 공감하지 못했으리라. 당신의 영혼이 육체를 떠나는 순간을 나는 지켜보지 못했다. 그렇게 빨리 가실 줄 알았다면, 나도 내 아버지에게 물어볼 게 있었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대답이겠지만, 그래도 당신의 입에서 듣고 싶은 이야기. 마크 스트랜드의 시를 읽으며 감정이입을 피할 수 없었다. 우리 아버지도 그의 아버지처럼 평생 돌아다니셨다. ‘집이 추워서’ 여행을 떠났다니. 당신을 비난한 내가 부끄럽다.

캐나다에서 태어나 미국의 여러 도시에서 자란 마크 스트랜드는 원래 화가 지망생이었다. 예일대에서 당대의 일류화가 알베르에게서 회화를 배우다 그만 그림에 대한 흥미를 잃었고, 시인이 되기로 결심했단다. 화가를 꿈꾸었던 시인의 작품답게 이미지가 예사스럽지 않다.

‘고통의 스카프가 나를 따뜻하게 해줬지.’ 고통을 목에 둘러 늘 따뜻했지. 따뜻한 스카프의 이미지와, 고통이라는 어두운 단어가 결합해 인생의 깊이를 담은 시구가 탄생했다. 개인적인 고통일 수도 있지만, 시인의 아버지는 유대인이었다. 시대적인 고초도 섞였을 게다.

시인이 아버지를 애도하는 자전적인 시인데, 대화체로 돼 있어 박진감이 넘친다. 같은 질문을 두 번 하는데, 처음엔 비교적 쉬운 (직접적인) 대답을, 나중엔 어려운 대답을 배치했다. 두 대답이 연결돼 있고, 서로 대치하는 듯하지만 실은 같은 말이다. 매일 밤 다른 여자와 자는 남자는 사실 ‘혼자’ 자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이 시가 이해 안 된다면, 당신은 행운아이며 축복받은 인생을 산 사람이다. 당신을 낳아준 부모님에게 감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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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아버지가 실제 나눈 대화를 옮긴 것 같지는 않다. 이승에서는 주고받지 못한, 그러나 아들이 아버지에게 꼭 물어보고 싶었던 의문들. 그가 듣고 싶었던 (혹은 듣고 싶지 않았던) 아버지의 대답들로 시를 만들었다. 뒤는 좀 산문적이다. 지루하지 않은 앞부분만 한글로 옮겼다. 우리 모두의 아버지를 위한 대답이 되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2016-10-2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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