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은둔 끝낸 청년이 은둔 청년에게… “쉬어도 괜찮아요, 도움 청하세요”

9년 은둔 끝낸 청년이 은둔 청년에게… “쉬어도 괜찮아요, 도움 청하세요”

김민석 기자
김민석 기자
입력 2024-05-02 02:59
수정 2024-05-02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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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유리 서울시 청년정책조정위원

20대 시절 공황장애·우울증 겪어
약물·미술 치료 통해 의욕 찾아
비슷한 문제 겪는 사람들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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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유리 서울시 청년정책조정위원이 지난달 30일 ‘세바시와 함께하는 서울시민 쏘울 자랑회’에서 강연하고 있다. 세바시 제공
권유리 서울시 청년정책조정위원이 지난달 30일 ‘세바시와 함께하는 서울시민 쏘울 자랑회’에서 강연하고 있다.
세바시 제공
“저를 보고 고립·은둔(히키코모리) 청년들이 불안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해요. ‘쟤는 저렇게 행복해졌는데, 나는 나아질 수 있을까’ 하고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권유리(37) 서울시 청년정책조정위원은 20대부터 9년간 고립·은둔 청년으로 살았다. 하지만 이제 사회로 나와 같은 아픔을 겪는 청년들을 돕고 있다. 그는 지난달 30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와 함께하는 서울시민 쏘울 자랑회’에 세 번째 연사로 나왔다.

권 위원은 20대 시절 출근길에 공황장애를 겪고 업무 중 원인 모를 통증으로 응급실에 실려갔다. 그는 “당시 상사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고 동료들에게 따돌림당한 데다 믿었던 남자친구에게 배신까지 당하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며 “2014년 말부터 집에서 고립·은둔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뒤이은 사건들은 그를 더 집안으로 몰아넣었다. “2주일 만에 외출을 하게 한 친구는 나를 다단계 업체에 데려가더라”며 “다섯 시간 만에 풀려나 집에 와 보니 도둑이 집안을 뒤져 돈 될 만한 건 다 가져갔다”면서 허탈하게 웃었다.

그는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루에 수천번씩 하고 한번에 성공하기 위해 3중, 4중 계획을 세웠다”며 “하지만 실행할 힘조차 없을 정도로 무기력했으며, 사는 것이 부모님에게 최대한의 효도라고 생각했다”고 돌아봤다.

권 위원은 그럼에도 구청에서 공공근로로 어린이공원 놀이 시설을 소독하거나 불법 전단을 제거하는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두 달 계약 기간이 끝나면 다시 은둔의 삶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9년이 무심히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대화를 못 이어 가고 말을 제대로 못하게 됐다는 걸 깨달았다. 권 위원은 “밤새 울고 나서 병원 문을 열자마자 찾아갔다”고 말했다.

약물치료를 꾸준히 받자 우울증이 나아지고 의욕도 생겼다. 지난해 5월 서울시의 고립·은둔 청년 지원 사업을 통해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의 미술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권 위원은 “초반에 그린 그림이 너무 끔찍해, 그런 그림을 그린 나도 끔찍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하지만 몇 주 뒤 다시 그림을 보니 나도 모르게 ‘희망’을 빛으로 표현한 부분이 보였다”고 돌아봤다.

이후 빠르게 회복해 서울시 청년이음센터의 고립·은둔청년 서포터즈에 지원했다. 그는 “처음 만날 때보다 밝고 적극적으로 변한 청년들 모습에 오히려 내가 자신감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재취업에도 성공했다. 업무 중 배운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지난해 말 색칠하기 책 ‘릴렉싱 컬러링 북’(부크크)을 출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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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부터 서울시 청년정책조정위원으로 활동 중인 그는 강연 말미에 고립·은둔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괜찮아요. 당신은 부족하지도 잘못하지도 않았어요. 충분히 쉬다가 나오고 싶을 때 어려움이 있다면 도움을 요청하세요. 나를 괴롭게 했던 사람들과 다른, 진심으로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2024-05-02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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