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특화거리인가, 노인의 외딴섬인가

노인 특화거리인가, 노인의 외딴섬인가

이하영 기자
입력 2018-10-02 22:20
수정 2018-10-02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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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위한 ‘종로 락희거리’ 가 보니

서울시, 2년전 2억 6000만원 투입·조성
100여m 거리에 팻말·간판만 ‘덩그러니’


몇몇 젊은이들만 이색적 풍경 보러 찾아
노인들 “놀거리 하나 없이 거리만 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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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락희거리’
이름만 ‘락희거리’ 지난 2016년 서울시가 2억 6000만원을 들여 종로 탑골공원 뒤편에 실버세대를 위한 거리로 조성한 ‘락희거리’의 풍경. 노인의날을 맞은 락희거리가 초입에 커다란 안내판이 놓여 있을 뿐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어르신, 이 동네에 ‘락희거리’가 어딘지 아세요?”

“락, 뭐? 내가 여기 매일 출근도장 찍는데 그런 거 몰라.”

노인의날인 2일 서울 종로구에 ‘어르신문화특화거리’로 조성된 ‘락희거리’에서 만난 강모(76)씨는 자신이 늘 오는 이곳이 락희거리인 줄 몰랐다. 강씨는 “가만히 있어 봐”라고 멈춰 세운 뒤 주변에 있던 지인들을 불러 ‘락희거리’ 수소문에 나섰다. 하지만 그들 역시 알지 못했다. 그때 한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지나가며 “여기가 락희거리 아녀”라며 강씨 일행에게 핀잔을 줬다. 락희거리는 서울시가 2016년 노인들의 즐겁고 기쁜 생활을 도모한다는 취지로 종로 탑골공원 뒤편에 2억 6000만원의 예산을 들여 조성한 거리다. 명칭은 영어로 행운을 의미하는 ‘럭키’를 노인들이 ‘락키’로 발음하는 것에서 착안해 즐거울 ‘락’(樂)자와 기쁠 ‘희’(喜)자를 조어해 만들었다. 그런 락희거리가 본연의 의미가 상당히 퇴색한 채 방치돼 있다. 거리 입구엔 ‘락희거리’라고 쓴 팻말이 탑골공원 일대 지도와 함께 서 있었지만, 1960~70년대 풍의 가게 간판만이 사실상 볼거리의 전부였다. 또 작은 가게 8~9개가 입점해 있는 이 거리는 고작 100m에 불과해 성인의 보통 걸음으로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거리 위에는 전깃줄이 잔뜩 늘어져 있었고 바닥엔 담배꽁초와 종이컵 등 쓰레기가 나뒹굴고 있었다. 지하철 종로3가역 바로 앞에 있어 오가는 사람은 많았지만 이곳이 특화거리란 것을 알아채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노인을 위한 큰 글자 메뉴판도 가게에 따라 크기가 들쭉날쭉했다. 일반 식당과 글씨 크기에 차이가 없는 식당도 많았다. 이 거리에 있는 ‘황태 해장국’ 식당에서 식사를 한 안모(78)씨는 “글씨가 크면 굳이 가게 종업원에게 일일이 뭘 파는지 물어보지 않아도 돼 편한데, 이 거리에 메뉴 글씨를 큼지막하게 써 놓은 곳은 한두 곳뿐”이라며 씁쓸해했다.

또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상점의 내부 장식과 학창 시절 입었던 교복에 향수가 자극돼 감상에 젖는 노인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이색적인 풍경을 보러 오는 일부 젊은층에게만 호기심의 대상이 됐다. 락희거리는 그저 도심 속 노인들이 갈 곳 없어 갇혀 있는 섬에 불과한 듯했다.

노인들은 “벽화나 전시품으로 거리를 꾸미는 것은 노인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 되고 필요하지도 않다”고 입을 모았다. 이모(80)씨는 “노인들이 관광상품이라는 얘기냐”고 호통을 쳤다. 김모(77)씨는 “노인정은 답답하고, 딱히 일거리도 없고 해서 이곳에 나와 세상 구경하는 것”이라면서 “이런 거리를 꾸미는 데 손쓰지 말고 차라리 일자리를 더 달라”고 호소했다.

락희거리가 실효성 없는 전시행정에 그친다는 지적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조성 당시 어르신들이 많이 찾는 탑골공원 인근에 옛 문화를 추억하는 공간을 만들어 드리고자 구성했던 것”이라면서 “노인들의 필요가 무엇인지 찾아 원하는 것을 해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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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2018-10-03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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