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명절이면 고성·핀잔·절연… 댁의 추석은 안녕하십니까

[단독] 명절이면 고성·핀잔·절연… 댁의 추석은 안녕하십니까

입력 2017-10-01 21:38
수정 2017-10-01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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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져 있던 가족… 만나도 불화

취업 여부 묻다 “왜 묻나” 다툼
결혼 잔소리에 아예 귀성 포기
지난 설 폭력신고 하루 1077건
“전통적 가족 강요로 갈등 촉발… 함께 즐기는 공유 경험 늘려야”

명절 때마다 불화에 휩싸인 가족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학업·취업·결혼·육아 등과 관련한 생애 주기별 잔소리, 고부 간의 갈등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핵가족화로 떨어져 살던 가족들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여 대화하면서 생각과 표현의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이해하려 하지 않은 결과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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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김모(45)씨는 최근 3년 동안 고향을 단 한번도 찾지 않았다. 아버지가 정년퇴임한 이후 “빨리 결혼하라”는 잔소리는 더욱 집요해졌고 “연을 끊자”는 부모의 압박도 계속됐기 때문이다. 김씨는 아예 외면하기로 했다. 이번 추석 땐 캠핑 동호회 회원들과 경남 남해로 떠날 계획을 세웠다.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정모(30·여)씨는 아버지가 “시험에 합격할 때까지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해 가족과 담을 쌓았다. 이번 추석 때에도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 서울 동작구 노량진에서 시험 준비만 할 계획이다.

차례와 제사 등 제례 문화가 갈등의 발화점이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유교문화가 점점 약화하는 시대 흐름에 따른 마찰로 여겨진다. 직장인 이모(27)씨는 최근 집안 어른들께 “제사와 차례를 지내지 말자”고 건의했다가 크게 혼이 났다. 이씨도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요구가 수용될 때까지 명절에 가족을 찾지 않겠다며 시위 중이다.

주부들에게 명절은 특히나 괴롭다. 집안일의 양과 정비례하며 커지는 주부들의 스트레스는 연령대와 관계없다. 직장인 장모(31)씨에게는 시어머니와 함께하는 자리가 늘 가시방석이다. 장씨는 “시어머니가 아무리 부담을 주지 않는다고 해도 며느리 입장에서는 시어머니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로 꽂히는 경우가 많다”면서 “‘아침 잘 챙겨 먹고 다니냐’는 질문은 ‘우리 아들 안 굶기느냐’로 들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말했다.

평생 시집살이를 한 시어머니들은 이젠 며느리까지 모셔야 하는 처지에 그저 한숨만 나온다. 전주에 사는 김모(59)씨는 “며느리 둘이 있지만 둘 다 ‘음식을 해 본 적 없다’며 은근슬쩍 떠맡긴다”면서 “직장 다니면서 피곤한 건 알겠지만 시댁에 와서 쉬다 가려고만 하는 모습을 보면 얄미울 때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지난 1월 설 연휴 때 조카한테 “취직은 했니”라고 말했다가 주변에서 “할 말, 안 할 말 가리지 않고 말하면 어떡하느냐”고 핀잔을 들었던 황모(62)씨는 “무슨 얘기만 하면 다들 ‘꼰대’라고 한다”면서 “어른에 대한 공경심은 바라지도 않지만 적어도 예의는 갖춰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말했다.

평일엔 가슴을 답답하게 한 직장이 연휴에는 안식처가 되기도 한다. 육아가 두려운 세 아이의 아빠 강모(38)씨는 추석 연휴 기간 회사 당직근무를 자청했다. 연휴 때 출근하면 아이를 돌보지 않아도 되고 아내의 잔소리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씨는 “명절 때 회사는 숨을 돌릴 수 있는 좋은 피난처가 된다”고 말했다.

1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설 연휴 동안 전국 경찰서 112 상황실에 접수된 가정폭력 신고 건수는 일평균 1077건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하루 평균 신고 건수인 724건보다 48.8% 많은 수치다. 전문가들은 명절에 가족의 갈등 잦아지는 이유에 대해 “평소 소통 없이 지내온 가족들이 명절 때에만 한시적으로 전통적인 가족을 구현하도록 강요를 받으면서 스트레스가 쌓이고 갈등이 촉발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명신 서울시건강가족지원센터장은 “현대 사회에서는 가족이 공유하는 경험이 적어 고락을 함께하는 심리적 기능이 약화돼 있다”면서 “세대마다 다른 가족에 대한 기대치를 인정하고 적극적인 소통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은숙 상명대 가족복지학과 교수는 “사회는 변했는데 명절만 되면 시대에 역행하는 문화를 강조하면서 젊은층이 부담을 느끼는 것”이라면서 “가족 모두가 함께 즐길 만한 활동을 공유하면서 행복한 경험을 누적해 나가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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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2017-10-02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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