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살기 힘들어’ 나이 고치는 베이비부머

‘먹고살기 힘들어’ 나이 고치는 베이비부머

최훈진 기자
입력 2015-08-20 00:00
수정 2015-08-20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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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령 정정 1년 새 5.3% 급증

대구에 사는 김규영(56·가명·은행원)씨는 지난 5월 서울 서초구의 한 법무법인을 찾았다. 1959년 10월 출생인 그는 가족관계등록부(호적)상 생년월일이 1958년 10월로 돼 있었지만 복잡한 절차 때문에 나이를 바꾸는 것을 차일피일 미뤄 왔다. 하지만 정년퇴직을 앞두고 고민이 시작됐다. 결국 그는 법원에 소명 자료를 제출해 지난달 나이를 정정했다. 3개월 만에 1년이 젊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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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와 비슷한 이유로 서울가정법원을 찾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특히 정년과 국민연금 수령 등을 앞둔 50대 이상 신청인이 증가하는 추세다. 노후 생활에 대한 불안감 탓에 나이를 줄여 정년퇴직을 늦추려는 사람들과 나이를 늘려 한시라도 빨리 국민연금 등을 수령하려는 사람들이 동시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19일 서울시내 각 지방법원에 접수된 연령 정정 신청 건수는 2013년 939건에서 지난해 989건으로 1년 새 50건(5.3%)이 늘었다. 올 들어서도 상반기 동부지법을 제외한 3개 법원에만 533건의 연령 정정 신청이 들어왔다. 서울 전체로 연말까지 1000건을 넘을 것이 확실시된다.

북부지법 관계자는 “과거에는 나이를 중시하는 분위기 때문에 동년배들에게 후배 취급을 받는 것이 억울하다며 나이를 고쳐 달라는 등 다양한 사유가 있었지만 요즘엔 주로 국민(노령)연금 수령이나 정년 연장 등의 혜택을 보기 위해 연령 정정을 접수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연령을 바꾸려 하는 신청인들은 50대 중·후반에 쏠려 있다. 남부지법 관계자는 “신청인 연령을 따로 관리하지는 않지만 젊은 층은 극소수이고 대부분이 50대 이상”이라고 귀띔했다.

같은 50대 이상이라도 개인의 경제적인 상황에 따라 연령을 낮추거나 높이려 하는 것도 특징이다. 서부지법 관계자는 “공무원이나 전문직 종사자들이 정년 연장 등을 노려 연령을 낮추려 한다면 반대로 저소득층은 국민연금이나 노령연금을 빨리 받기 위해 연령을 높이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각 법원에서는 입학, 졸업 증명서 등의 객관적인 자료를 토대로 연령 정정 접수 건에 대해 ‘승인’(인용) 또는 ‘거부’(기각) 결정을 내린다.

호적상 연령을 정정할 경우 국민연금 수급 조건(10년 이상 연금보험료 납부)만 충족되면 연금 개시 연령이 앞당겨진다. 국민연금공단 관계자는 “연령이 낮아져서 연금 개시 연령에 미달될 때는 이미 지급된 연금액에 대한 환수 조치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반면 호적상 나이가 달라졌다고 해도 정년 연장은 쉽게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관련 소송이 잇따르고 있다. 내년부터는 300명 이상 사업장에서 60세 정년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내용의 고령자고용촉진법이 시행되기 때문에 앞으로 소송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테면 동일한 생년월일이라도 음력과 양력 중 어떤 날짜를 호적에 올리느냐에 따라 정년퇴직 시기가 달라지기 때문에 이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전반적인 경제 상황이 안 좋은 데다 급속한 고령화로 노후 불안 심리가 커지면서 연령정정 신청이 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법무법인 위드인의 이금호 변호사는 “국민연금, 정년 등의 이해관계가 얽히다 보니 과거와 달리 정확한 생년월일을 되찾으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면서 “요즘 같은 불경기가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가장 큰 배경”이라고 말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 정년 연장 추세에 따라 정년이 늘면 기대 수익이 그만큼 크기 때문에 변호사 비용 부담에도 불구하고 연령 정정을 하려는 사람들이 계속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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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2015-08-2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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