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로 터전 잃은 구룡마을 63세대 ‘이주대책마저 불탔다’

화마로 터전 잃은 구룡마을 63세대 ‘이주대책마저 불탔다’

입력 2014-12-02 00:00
수정 2014-12-02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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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개포중 강당에서 추운 겨울 보내는 이재민들

눈발이 흩날리던 1일 오전 11시. 지난달 9일 화재로 구룡마을 보금자리를 잃은 이재민들의 임시 거주지인 서울 강남구 개포중 대강당. 구룡마을에서 30여년을 보낸 유성복(54)씨가 가족들과 함께 이곳에서 생활한 지도 벌써 3주째다. 비록 무허가 가건물이었지만 그들에겐 이 세상에 하나뿐인 ‘집’이고, ‘역사’였기에 화마에 날려버린 상실감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유성복씨
유성복씨
유씨가 구룡마을 8지구에 보금자리를 튼 건 1986년. 전남 벌교에서 태어난 그는 26살에 청운의 꿈을 품고 아내와 어린 아들 둘과 함께 상경했다. 그가 구룡마을에 둥지를 튼 건 먼저 서울에 올라와 이곳에 자리 잡은 여동생의 권유 때문이다. 자고 나면 구룡마을에 판잣집이 우후죽순처럼 생기던 시절이었다. 유씨는 송파구 가락시장 당근 공판장에서 판매 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렸다.

처음에는 구룡마을에서 평생을 보낼 줄은 몰랐다. “5평 남짓한 가건물에 ‘깨복쟁이’(벌거숭이를 뜻하는 전라도 방언) 아들 둘과 아내와 함께 살자니 끔찍했지. 화장실은 벌교 시골보다 못했어.” 네 식구가 살기엔 방 한칸은 너무 비좁았다. 그래서 경기 성남으로 이사를 가기도 했다. 하지만, 일터에서 너무 멀어 1년도 안 돼 구룡마을로 돌아왔다.

그래도 구룡마을은 고마운 곳이다. 금쪽같은 막내아들을 이곳에서 얻었고, 세 아들 모두 건강하게 자랐다. 큰아들은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고, 둘째는 직장을 잡았고, 막내는 해병대에 입대했다. 10년 전에는 판잣집을 2층으로 증축했다. 2층 집은 유씨네가 유일했다. 2011년 5월부터 이곳 주민들에게도 주민등록이 허용되면서 그들도 주소지를 구룡마을로 등재했다. “난 구룡마을에 사는 게 부끄럽지 않아. 내가 땀 흘려 번 돈으로 아들놈들을 정직하게 키워냈으니 이 정도면 됐잖아.”

그러나 화재는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화마는 구룡마을 5만 8000㎡ 중 900㎡와 391개동 1807세대 중 16개동 63세대를 완전히 삼키고서야 진압됐다. 유씨는 물론, 이웃에 살던 여동생 가족도 졸지에 이재민이 됐다.

유씨는 화재 진압이 잘못됐다고 호소했다. 소방장비 69대와 인력 409명이 투입됐지만, 마을 소화전의 위치조차 몰랐다. 길이 좁아 소방차는 모두 들어오지 못했고, 물이 떨어진 소방차는 무력하게 불길만 바라볼 뿐 손도 쓰지 못했다.

더 분통이 터지는 건 화재 후 이주대책 때문이다. 구룡마을 도시개발사업이 서울시와 강남구의 이견으로 3년째 지연되면서 도시개발구역 지구지정이 지난 8월 해제됐다. 지구지정만 돼 있었다면 불이 나더라도 도시개발법에 따라 향후 구룡마을 개발 시 이주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긴급복지지원법에 따라 임대주택 1년 거주 지원만 받을 수 있다. 1년 후에는 구룡마을로 돌아올 수도 없고, 구룡마을 개발에 따른 보상을 받을 법적 근거도 사라진다.

서울시는 이재민들에게 ‘임대주택 입주 우선권’을 부여하기로 했다. 그러나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자격이 제한되기 때문에 유씨 등 작은 소득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해당되지 않는다. 유씨는 다른 이재민들과 함께 2일부터 서울시청에서 항의집회를 열기로 했다. “우리가 원하는 건 구룡마을 거주자와 동등한 권리를 보장해 달라는 겁니다. 더 달라는 것도 아니에요. 만약 서울시가 들어주지 않는다면 불타버린 집으로 돌아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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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2014-12-02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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