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만남 ‘악마의 덫’이되다

사소한 만남 ‘악마의 덫’이되다

입력 2011-06-14 00:00
수정 2011-06-14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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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규 순천대총장 함바비리·저축銀수사중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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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규 순천대 총장
임상규 순천대 총장
“‘악마의 덫’에 걸려 빠져나가기 힘들 듯하다. 그동안 너무 쫓기고 시달려 힘들고 지쳤다. 모두 내가 소중하게 여겨온 만남에서 비롯됐다. 잘못된 만남과 단순한 만남 주선의 결과가 너무 참혹하다…”(임상규 총장 유서 중)

2004년 과학기술부 차관을 비롯해 국무조정실장, 56대 농림부 장관 등 엘리트 고위 공직자의 길을 걸었던 임상규(62) 순천대 총장.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임 총장은 13일 오전 8시 10분 전남 순천시 동산리 선산 인근에 주차된 쏘나타 차량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평소의 꼼꼼한 성격을 반영하듯 깔끔한 양복 차림이었다. 자세조차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러나 고심의 흔적은 역력했다. 차량 조수석에서는 참숯을 피운 화덕과 함께 절절한 심경을 담은 A4 용지 한 장 분량의 유서가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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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대 총장이 쏘나타 승용차 뒷좌석에 남겨둔 유서. ‘악마의 덫에 걸려 빠져나가기 힘들 듯하다.’는 글귀가 뚜렷하게 눈에 띈다. 순천 연합뉴스
순천대 총장이 쏘나타 승용차 뒷좌석에 남겨둔 유서. ‘악마의 덫에 걸려 빠져나가기 힘들 듯하다.’는 글귀가 뚜렷하게 눈에 띈다.
순천 연합뉴스
임 총장은 지난 3일 부산저축은행의 영업정지 전 예금인출 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고, 함바 비리 연루 의혹으로 다시 수사 대상에 오른 상태였다. 그는 “금전 거래는 없었다.”며 결백을 호소했다. 유족들도 “함바 비리 관련 검찰 수사가 재개되자 ‘사람 소개시켜 준 게 무슨 죄냐. 돈 한 푼 받은 적이 없다’며 억울해했다.”고 전했다.

그런 임 총장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면서 남긴 유언은 ‘악마의 덫에 걸렸다.’는 것이었다. 그가 말했던 악마의 덫은 과연 무엇일까. 일각에서는 건설현장 식당 브로커 유상봉씨와의 관계를 암시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고위 공직자로서 유씨 등 자연스럽게 여러 사람과 만나 어울리다 서로를 소개해 준 것이 비리 고리와 같은 ‘악연의 출발점’이 됐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시의 한 고위 공직자는 “친한 동향 사람과 식사를 하고 골프도 치며 친분을 나누다 우연히 사람을 소개해 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거절할 수 없다.”면서 “가볍게 생각하고 지인들끼리 사소한 만남을 주선하는 고위 공무원들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 총장의 경우도 비슷했다. 그는 10여년 전 알게 된 유상봉씨에게 장수만 전 방위사업청장과 경찰 간부급 인사는 물론 그 지역의 공무원, 자치단체장 등을 소개해 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결국 이들이 함바 비리와 관련된 핵심 인물로 지목돼 수사선상에 놓이자 도의적 책임을 느낀 임 총장은 극심한 부담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동생 임승규씨는 13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2002년엔 유씨가 그렇게 나쁜 사람인지도 몰랐고, 누구를 소개해 달라고 해서 해준 것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런 사례는 비단 임 총장만의 일은 아니다. 이근영 전 금융감독위원장(2000년 8월~2003년 3월) 역시 2001년 골드상호신용금고 인수를 시도하던 김흥주 삼주산업 회장을 김중회 당시 금감원 부원장에게 소개해 준 사실이 드러나 금품 비리 의혹으로 2007년 검찰 조사를 받은 바 있다. 이 전 원장은 “개인적으로 알고 있던 김 회장을 후배인 김 부원장에게 소개시켜 준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수사 선상에 오르면서 한동안 곤욕을 치렀다.

결국 검찰 조사와 자살을 부른 원인은 아주 사소한 만남에서 출발한 셈이다. 홍성태 상지대 사회학과 교수는 “결국 그런 인간관계들이 청탁의 덫, 비리의 덫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처신과 만남이 얼마나 중요한지 깊이 새겨야 할 유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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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경·김동현·윤샘이나기자 white@seoul.co.kr
2011-06-14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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