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안 통해도 ‘효심’은 통해요…‘서울시 효행상’ 받은 中출신 이주여성 왕혜연씨

말은 안 통해도 ‘효심’은 통해요…‘서울시 효행상’ 받은 中출신 이주여성 왕혜연씨

입력 2011-05-07 00:00
수정 2011-05-07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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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어버이날… 부모님 가슴에 ‘사랑’을 달아드리세요

‘한국인 남편과 결혼한 뒤 5년 동안 밤낮으로 시아버지의 병수발을 들며 시아주버니의 병원비까지 떠맡은 중국 출신의 결혼이주 여성.’ 억척스러운 맏며느리 모습이 떠오르지만, 6일 오후 서울상공회의소에서 만난 왕혜연(30)씨는 불그스레한 볼에 웃음이 끊이지 않는 소녀 같았다. 조금 어눌한 한국말에 중국어를 간간이 섞어 가며 이야기를 늘어 놓는 왕씨는 마치 친구와 수다를 떠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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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동안 시아버지의 병수발을 해온 중국 출신 결혼이주 여성 왕혜연씨가 6일 오후 서울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살림은 어렵지만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라며 환하게 웃고 있다.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5년 동안 시아버지의 병수발을 해온 중국 출신 결혼이주 여성 왕혜연씨가 6일 오후 서울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살림은 어렵지만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라며 환하게 웃고 있다.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어려운 형편에도 시아버지를 돌보며 꿋꿋이 살아 가는 왕씨는 서울시가 어버이날을 맞아 시상한 효행자 명단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렸다.

왕씨의 하루는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할 정도로 바쁘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아침상을 차리고 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다음부터 더 바쁘다. 8년째 뇌졸중을 앓고 있는 시아버지의 병수발이 왕씨의 몫이기 때문이다. 몸 오른쪽이 마비돼 거동을 거의 못하는 시아버지를 화장실에 모셔다 드리고, 필요한 물건들을 갖다 드리다 보면 어느새 점심 때가 된다. 친딸이라도 쉽지 않은 궂은일을 도맡아 한다. 시아버지 점심상을 차리고 나면 석관동 집 근처에 있는 사회복지관으로 향한다. 복지관에 마련된 커피숍은 왕씨의 일터다. 하루 6~7시간 커피숍에서 일하면서 매달 40여만원씩 모아 당뇨병으로 입원한 시아주버니의 병원비에 보탠다. 건강상의 문제로 택시운전 일을 잠시 쉬고 있는 남편 박웅규(44)씨는 아내 왕씨에게 늘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란다.

왕씨는 결혼 전까지 이런 현실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 대학교 2학년이던 2005년 가을 조선족 교수가 “한국 남자는 다 좋다.”며 박씨를 중국으로 데려와 소개시켜 줬다. 드라마 ‘대장금’을 보며 한국에 대한 환상에 빠져 있던 왕씨는 박씨의 선량한 모습에 호감을 느꼈다. 박씨도 때 묻지 않은 왕씨의 미소에 반했다. 그래서 그만 ‘거짓말’을 해 버렸다. “한국에서 혼자 살고, 아버지가 계시긴 하지만 시골에 따로 사십니다.” 왕씨는 이듬해 2월 한국으로 건너와 박씨와 결혼했다. 하지만 왕씨가 한국에서 마주한 것은 몸이 편찮은 시아버지와 아주버니, 비좁은 반지하집이었다. 중국 상하이에서 부족함 없이 살았던 왕씨가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었다.

그러나 왕씨는 돌아서지 않았다. 현실을 피하거나 도망치지 않았다. “그때 전 속았어요.”라면서 남편 박씨의 팔을 꼬집다가 이내 중국어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하느님은 공평하세요. 비록 저에게 어려운 살림을 주셨지만, 착한 남편을 주셔서 행복하게 살고 있잖아요.”

한국말을 모른 채 무작정 한국에 오는 바람에 결혼 초기 답답한 장벽도 많았다. 박씨는 행여나 새내기 왕씨가 길이라도 잃을까 봐 8개월 동안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다. 첫아이를 낳고 나서는 집에만 머물렀다. 첫아이가 5개월쯤 돼서 시민단체 푸른시민연대로 한국어를 배우러 다녔지만, 이내 둘째 아이를 임신해 다시 집에 머물게 됐다.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 채 집에만 있다 보니 우울증을 얻었다. 악몽으로 잠을 설치기도 했다. 하지만 왕씨는 그런 시간도 소중하게 기억한다. “집에서 TV로 드라마를 열심히 보다 보니 한국말이 많이 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국어 기초를 쌓은 덕에 왕씨는 이내 집 근처 사회복지관에서 어렵지 않게 한국어를 배울 수 있었다. 복지관에서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 일을 배워 어엿한 일자리도 얻었다.

왕씨는 또 성북외국인 근로자센터의 홍보대사로 일하며 이곳을 찾는 이주 여성들을 상담한다. 왕씨는 “주변 이주 여성들을 보면 나보다 힘들게 사는 이들이 많다.”면서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면 한국 여성들이 하는 것을 이주 여성들도 다 할 수 있다. 한국에 왔으니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또박또박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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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2011-05-07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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