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한 강석주 누구인가...20년 넘게 ‘北 외교사령탑’

사망한 강석주 누구인가...20년 넘게 ‘北 외교사령탑’

입력 2016-05-21 10:18
수정 2016-05-21 10:18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1994년 북미 기본합의서 체결 주역…“저돌적” 평가

20일 식도암으로 사망한 강석주 전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는 20년 넘게 ‘북한 외교 사령탑’으로 활약했다.

강 전 비서는 1984년 외무성 부부장에 임명되고 나서 1987년 외무성 제1부부장, 1998년 외무성 제1부상으로 각각 승진하며 북한의 대미협상과 핵외교를 총지휘했다. 강석주는 2010년 내각 부총리에 임명돼 지난 2014년 4월까지 부총리직을 수행했다.

조선중앙방송은 21일 ‘부고’를 통해 “강석주 동지는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후 당중앙위원회 국제부 지도원, 과장, 외교부 부부장, 제1부부장으로 사업하면서 존엄높은 우리 당과 공화국의 대외적 권위를 보장하고 주체혁명 위업의 승리적 전진을 위한 국제적 환경을 마련하는 데 적극 기여하였다”고 전했다.

강석주는 1994년 6월 평양을 방문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김일성의 회담에 배석했으며, 같은 해 10월 로버트 갈루치 미국 북핵 특사와 북미 기본합의서에 직접 서명한 협상의 주역이다.

중앙방송은 “강석주 동지는 1990년대 초부터 반미 핵대결전을 승리에로 이끄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천재적인 외교지략과 탁월한 영도를 실현하는 전초선에서 활약했다”고 평가했다.

강석주가 우리에게 이름이 알려진 것은 1993년 북미 고위급회담 북측 대표를 맡으면서부터였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2000년 남북정상회담 고별 오찬을 비롯해 2001년 푸틴 러시아 대통령,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 2005년 후진타오(胡錦濤) 전 중국 국가주석 등과의 정상회담에 배석했다.

2000년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의 특사방미 때 동행하기도 했다.

지난해 7월 쿠바를 방문해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우호 관계 강화를 논의했으나 8월 이후 건강상 이유로 공식활동을 접은 상태였다.

외교가에서는 강석주가 뚝심 있고 추진력이 강해서 다소 ‘저돌적’이라는 지적이 많았으나, 인간성이 좋고 의리가 있다는 등 다소 엇갈린 평가를 받았다.

이인식 서울시의원 “수도권 교통은 하나의 생활권… 재정·운영 책임도 함께 나눠야”

서울시의회 이인식 의원(더불어민주당, 금천구 제1선거구)은 지난 23일 서울시의회 제1대회의실에서 개최된 ‘서울 광역교통망의 패러다임 전환’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해 수도권 광역교통체계의 구조적 문제를 진단하고, 합리적인 재정 분담과 교통수단 간 연계 강화를 통한 운영체계 개선을 촉구했다. 이날 토론회는 서울을 중심으로 경기·인천까지 확대된 수도권 생활권에 대응해 기존 광역교통 운영체계의 한계를 살펴보고, 지속가능한 광역통합교통체계 구축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 의원은 서울시의회 교통위원회 위원으로서 광역교통 운영의 재정적 책임과 시민 이동 편의 개선 방안을 중심으로 의견을 제시했다. 이 의원은 “서울·경기·인천은 이미 하나의 생활권으로 연결돼 있지만, 교통 운영주체와 비용 부담, 관리 책임은 여전히 행정구역별로 나뉘어 있다”며 “이제는 환승·요금 통합을 넘어 교통망 전체를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교통공사가 떠안은 막대한 재정 적자가 핵심 현안으로 지적됐다. 관련 자료에 의하면 2025년을 기준으로 공사의 부채 규모는 약 7조 7563억원에 달하고, 환승에 따른 손실 부담도 약 2907억원 규모인 것으
thumbnail - 이인식 서울시의원 “수도권 교통은 하나의 생활권… 재정·운영 책임도 함께 나눠야”

연합뉴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