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점화된 천경자 미인도 위작논란... 결론은 ‘오리무중’?

재점화된 천경자 미인도 위작논란... 결론은 ‘오리무중’?

함혜리 기자
입력 2015-11-02 17:34
수정 2015-11-02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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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미인도 위작 논란’ 사건이 당사자인 천경자 화백의 뒤늦은 사망 소식과 함께 다시 불거져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 천 화백 유족 “어머니 ‘목에 칼이 들어와도 내 그림 아니다’고 했다”
 천 화백 유족은 지난달 27일 간담회에서 천 화백을 미국으로 떠나게 만든 결정적인 요인을 제공했던 미인도 위작사건을 재거론하며 “어머니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 그림은 내가 그린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어머니의 말씀대로 ‘미인도’는 위작이 맞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1999년 천 화백의 ‘미인도’를 위조했다고 진술한 고서화 전문위조범 권 모씨를 수사했던 전직 검사는 이튿날 공개강연에서 “위조된 게 맞다고 본다”는 개인 의견을 밝혔다.

● 현대미술관 정준모 전 학예실장 “위작 아니다” 맞서
 이런 가운데 국립현대미술관 전 학예실장 정준모씨가 “미인도는 위작이 아니다”는 내용의 글을 최근 시사잡지에 기고했다. 현재 한국미술품감정협회 감정위원(유화), 미술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정씨는 ‘나비와 여인은 왜 미인도가 됐을까’라는 기고 글에서 “1990년 1월 금성출판사에서 출간된 ‘한국근대미술선집’ 중 11권인 ‘장우성/천경자’편에 해당 작품이 흑백 도판으로 이미 수록돼 있다. 이는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인정했다는 뜻”이라고 썼다. 그는 “1979년 10·26 사태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재산을 압류하는 과정에서 상당수 미술품이 발견됐다”며 “어깨에 나비가 앉은 여성을 그린 이 그림은 검찰을 통해 법무부로 넘어가 국가로 환수됐고 절차에 따라 국립현대미술관에 이관됐다”고 설명했다.

 ‘미인도 위작 논란’ 사건이 일어난 것은 1991년 봄 국립현대미술관이 ‘움직이는 미술관’을 운영하면서 원작을 복제해 판매하던 중 복제품과 원작을 본 천 화백이 국립현대미술관에 ‘위작’이라고 이의를 제기하면서다. 당시 국립현대미술관과 한국화랑협회 미술품감정위원회는 과학적 감정을 거쳐 1991년 4월 11일 진품이라고 판정했다. 졸지에 ‘자기 작품도 알아보지 못하는 화가’가 된 천 화백은 “이런 풍토에서 붓 들기가 겁난다”며 전시회 출품 등 작품 공개활동을 중지하겠다고 선언했고, 서울시립미술관에 작품 93점을 기증한 뒤 큰딸이 있는 미국으로 떠났다.

● 천 화백 “붓 들기 겁난다” 渡美... 위조범 권춘식 “내가 위조” 증언
 그 후 ‘미인도 위작논란’은 1999년 고서화 위조범 권춘식씨가 자신이 ‘미인도’를 위조했다는 증언을 하면서 재개됐다.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은 작품 입수 시점과 위조했다고 진술한 시점(1984년)이 불일치하며, 해당 작품이 1990년 1월 출간된 ‘한국근대회화선집’의 ‘장우성/천경자’편에 수록됐다는 것은 작가의 동의를 거쳤다는 것, 즉 작가가 인정한 작품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며 기존입장을 고수했다. 검찰은 공소시효가 만료돼 더이상 수사가 어렵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 근대작가 도록 등 DB 부족... 재료분석에 그쳐 위작논란 진행형
 근본적으로 이 같은 위작 논란은 작품 감정 시스템의 부실 탓이다. 작품의 소장자가 누가 됐든 간에 압류작품이 국가(국립현대미술관)로 환수될 경우 진위를 확실하게 따지는 게 원칙이지만 당시 그런 절차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1999년 과학적 분석을 했지만 재료에 국한됐을 뿐 작가의 화풍을 분석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작가에 대한 데이터베이스가 부실한 것은 위작 시비를 불러일으키는 또 다른 결정적인 이유다. 외국의 경우 유명작가들은 전 생애의 작품을 정리한 전작 도록을 제작해 작품 연도와 수장처 혹은 소장자의 변화를 일목요연하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일제시대와 6·25전쟁 등 혼란하고 어려운 시기를 거친 근대 작가들은 물론 현대작가들도 전작 도록을 갖춘 경우는 전무한 실정이다. 두 가지 문제가 시정되지 않는 한 위작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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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혜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lot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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