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자 恨과 고독으로 점철된 인생의 페이지

천경자 恨과 고독으로 점철된 인생의 페이지

입력 2015-10-22 09:31
수정 2015-10-22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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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화백의 노년에 가장 큰 고비는 1991년 ‘미인도’ 위작 논란이었다.

당시 67세였던 천 화백은 “자기 그림도 몰라보는 화가”라는 수군거림 속에 절필을 선언하고 미국으로 떠난다. 천 화백은 4개월 후 다시 돌아와 그림에만 몰두하기 위해 카리브해, 자메이카, 멕시코로 스케치 여행을 떠난다.

생애 마지막 전시라고 생각하고 71세 때인 1995년 호암갤러리에서 15년 만에 가진 대규모 전시는 8만명이 모여 줄을 서서 볼 정도로 대성공을 거둔다.

1998년 피붙이처럼 아끼던 채색화와 스케치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하고 섬유공예를 하는 딸 이혜선씨를 찾아 뉴욕으로 떠났다가 2003년 뇌출혈로 쓰러진다.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여자로서는 팔자가 센 것으로 비친 천 화백은 자서전에서 자신의 삶과 예술세계를 이렇게 풀이한다.

“내 과거를 열심히 살게 해 준 원동력은 ‘꿈’과 ‘사랑’과 ‘모정’ 세 가지 요소였다고 생각한다. 꿈은 그림이라는 예술과 함께 호흡해왔고, 꿈이 아닌 현실로서도 늘 내 마음속에 살아 있었다. 그리고 이것을 뒷받침해 준 것이 사랑과 모정이었다”

시를 많이 쓰지는 않은 소설가 박경리는 오랜 지기인 천경자를 ‘고약한 예술가’로 부른 시 ‘천경자를 노래함’을 통해 천 화백의 성품과 기질을 소개했다.

“화가 천경자는/ 가까이 갈 수도 없고/ 멀리 갈 수도 없고/ 매일 만나다시피했던 명동시절이나/ 이십년 넘게/ 만나지 못하는 지금이나/ 거리는 멀어지지도/가까와지지도 않았다// 대담한 의상걸친/ 그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허기도 탐욕도 아닌 원색을 느낀다.// 어딘지 나른해 뵈지만/ 분명하지 않을 때는 없었고/그의 언어를 시적이라한다면/ 속된 표현 아찔하게 감각적이다.// 마음만큼 행동하는 그는/들쑥날쑥/ 매끄러운 사람들 속에서/ 세월의 찬 바람을 더욱 배웠을 것이다.// 꿈은 화폭에 있고/ 시름은 담배에 있고/ 용기있는 자유주의자/ 정직한 생애/ 그러나/ 그는 좀 고약한 예술가다.”

세간에선 천 화백의 삶을 프리다 칼로에 비유하기도 한다.

고통받은 내용은 달랐지만 한과 고독으로 점철된 그의 슬픈 전설의 페이지에도 사랑에 대한 아픔, 삶의 비애가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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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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