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많다고?… 무대선 계급장 떼고 하는 것”

“나이가 많다고?… 무대선 계급장 떼고 하는 것”

입력 2012-09-24 00:00
수정 2012-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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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달 공연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20대 주인공役 65세 박세원 서울대 교수

베르디(1813~1901)의 대표작 ‘라 트라비아타’는 우리나라에서 맨 처음 공연된 오페라다. 프랑스 파리 사교계의 꽃 비올레타와 그를 흠모한 청년 알프레도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이 작품은 1948년 서울 명동 시공관에서 ‘춘희’란 제목으로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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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원 교수는 “오페라 가수는 운동선수와 비슷하다. 1막에서는 힘을 안배하다가 3막에서 폭발시키고, 남은 에너지로 4막까지 간다. 똑같은 아리아, 배역이라도 그 가수 만의 표현법이 있다는 게 최대 매력”이라고 말했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박세원 교수는 “오페라 가수는 운동선수와 비슷하다. 1막에서는 힘을 안배하다가 3막에서 폭발시키고, 남은 에너지로 4막까지 간다. 똑같은 아리아, 배역이라도 그 가수 만의 표현법이 있다는 게 최대 매력”이라고 말했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오페라의 문외한이라도 ‘축배의 노래’ 한 토막은 들어봤을 만큼 수도 없이 많이 공연됐다. 그럼에도, 새달 13~14일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홀 대극장에 올려질 ‘라 트라비아타’는 주목할 만 하다. 가수(테너)로 80여 차례 이상 주인공 알프레도 역을 소화했고, 연출자로도 30여차례 이상 ‘라 트라비아타’를 무대에 올린 베르디 전문가 박세원(65) 서울대 교수가 주인공과 연출을 맡았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이탈리아 산타체칠리아 국립음악원을 졸업한 뒤 1982년 로마에서 유럽 무대에 데뷔했다. 이후 이탈리아, 독일, 덴마크 등에서 오페라 ‘토스카’ ‘라 트라비아타’ ‘리골레토’ 등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지난 19일 충무아트홀에서 만난 박 교수는 “(알프레도 역을 맡아) 부담된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늙은 사람들은 좀 그만하지’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냉정하게 말하면 무대에선 계급장을 떼고 하는 거다. 나이가 많다는 게 흠이 돼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라며 웃었다. 이어 “나이가 들면 성대근육의 탄력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옛날 가수들이 헤비급이었다면, 요즘은 보통 체격의 테너들이 많은 것은 그만큼 과학적으로 성대구조를 연구해 근육을 효과적으로 단련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60대 중반의 나이지만 평생 술·담배를 멀리하고 ‘성대 근육’을 관리해온 그답게 자신 있다는 얘기로 들렸다. 또한 “(2003년) 서울시 오페라단장을 맡은 뒤로도 감(感)을 잃지 않으려고 무대에 꾸준히 올랐다. 이번에 알프레도 역을 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가수로 도전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무대의 감을 유지해야 후배들에게 이론에 치우치지 않고 인간적인 연출 지시를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지난 3월 서울시 오페라단 단장직을 그만두기 전까지 베르디의 작품에 천착했다. ‘리골레토’ ‘돈 카를로스’ 등 이른바 ‘베르디 빅5’는 세종문화회관의 3000여석을 가득 채울 만큼 인기를 끌었다. 물론 ‘새로운 도전은 하지 않고 검증된 레퍼토리를 우려먹는 것 아니냐.’는 비판적 시각도 공존했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바리톤 가수였던 베르디는 성악을 알고 오페라를 쓴 몇 안 되는 작곡가다. 그의 작품은 아무리 많이 불러도 가수의 성대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 현란한 기교를 부리지 않는데도 관객들에게는 깊은 울림을 안기는 명품오페라”라고 말했다.

그는 베르디의 대척점에 모차르트가 있다고 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는 테너 파트에 기교를 너무 넣어서 경험이 부족한 학생들은 자칫 성대에 치명적인 위험을 얻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유소년 야구에서 어린 투수들의 어깨를 보호하려고 커브를 던지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인 셈.

그는 또한 “지금껏 해왔던 것들은 싹 버리고 새롭게 해야만 혁신이나 창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몇 백 년 역사의 서양오페라를 우리가 접한 건 불과 60여년이다. 문화에서도 압축성장으로 (유럽을) 따라가려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이미 알려진 콘텐츠를 관객들이 진심으로 즐길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번 공연에서는 ‘라 트라비아타’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혀 없는 관객도 100% 이해할 수 있도록 상징적인 대목을 없애고 디테일을 최대한 살려 연출했다고 했다. 자막의 문어체식 표현도 현대적으로 풀어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물었다. 언제까지 무대에 서고 싶냐고. “더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 내려와도 여한은 없다. 원작에서 알프레도는 27~28세인데 (65세인) 내가 얼마나 배역의 분위기를 살리고, 관객의 몰입을 끌어내느냐가 중요하다.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70대에도 무대에 올랐지만 유명세를 등에 업는 건 의미가 없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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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24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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