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이나 아시아 민주화 싹을 꼭 서구적 틀에서 찾아야 합니까

아랍이나 아시아 민주화 싹을 꼭 서구적 틀에서 찾아야 합니까

입력 2012-06-20 00:00
수정 2012-06-20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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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준 교수의 민주주의 다시보기…계간지 ‘실천문학 여름호’

‘비서구 민주주의는 가능한가.’라는 질문은 그 자체가 모순처럼 보인다. 민주주의는 고대 아테네에서 시작된 가장 서구적인 제도 중 하나이기 때문에 ‘비서구’와 ‘민주주의’가 양립할 수 없다고 학습된 탓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이니 이집트 타흐리르 광장의 ‘아랍의 봄’ 소식을 들으면, ‘이들 나라에서도 이제야 서구 민주주의가 싹트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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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준 경희대 교수. 아카넷 제공
김상준 경희대 교수.
아카넷 제공


그러나 ‘민주주의=서양의 것’이란 상식을 뿌리부터 흔들어대는 이가 있으니 김상준(52) 경희대 공공대학원 교수다. 김 교수는 19~20세기 근대화와 함께 유럽의 수출상품이었던 서구 민주주의의 뿌리가 중국과 조선에 있었다는 뚱딴지 같은 주장을 한다.

막무가내는 아니고 그럴 듯한 근거를 댄다. 김 교수는 근대적 민주주의의 시작을 17세기 스피노자에게서 찾고 있다. 그렇다. ‘지구가 내일 멸망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했던 그 스피노자다.

네덜란드 철학자 스피노자는 17세기 유럽 최초로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공개적으로 옹호하는 급진 계몽주의자였다. 그가 살았던 17세기 유럽에는 민주주의가 없고, 혹독한 사상 탄압과 종교의 폭정뿐이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민주주의는 비판을 받았고, 고대 그리스의 직접민주주의 경험은 부정적으로 평가됐다.

아테네는 민주주의 때문에 망했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기독교가 유럽을 석권하고 나서 민주주의를 분명하게 옹호하는 유럽인은 없었다. 이때 스피노자가 인간과 세계의 자연성을 설파한 (교회가 볼때는 불온한) ‘에티카’를 썼고, 교회는 그에게 ‘무신론자’라는 낙인을 찍었다. 17세기 무신론자는 대한민국에서 ‘빨갱이’와 같은 지위를 갖는다. 스피노자는 그 후 1670년 ‘신학-정치 논고’를 출간했고, 이는 19세기 초까지 유럽 사상계를 뒤흔들었다.

김 교수는 스피노자가 친하게 지낸 14살 연상의 아이자 보시우스란 철학자가 있는데, 보시우스가 중국과 조선을 동경했다고 말한다. 17세기 해상권을 확보한 네덜란드가 극동의 일본과 교역했으니 아시아와 관련한 각종 정보가 네덜란드에 유입됐을 것은 당연한 이치. 보시우스는 중국과 조선은 철학자들이 다스리는 나라이고, 이들 철학자가 자신의 의무에 충실하지 못하면 인민들이 평가하는 자유를 가지고 있으며, 왕이 잘못하면 대놓고 이 철학자들이 왕을 비판하는 정치 선진국으로 믿었다는 것이다. 보시우스의 이런 생각은 같은 동네에 살면서 친하게 지내던 후배이자 동료인 스피노자에게 옮겨갔을 것이고, 스피노자의 급진 계몽주의 사상의 이론적·철학적 배경이 됐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설명이 길어졌지만, 스피노자의 급진철학과 유럽 민주주의 탄생의 이론적 배경에 ‘비서구’인 중국과 조선이 있었으니 ‘과연 민주주의를 서구에서 빌려왔다고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나아가 김 교수는 BC 500년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 원형도 사실은 BC 2000년 시리아-메소포타미아 고대 아시아 국가의 다중 의회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이것도 김 교수의 막연한 아시아 우월주의적 주장이 아니고, 덴마크 출신의 미국 고고학자 토르킬드 야콥센(1904~1993)이 주장한 것을 인용한 것이다. 민주주의 원형을 찾아보면 서구보다 아시아 쪽이 기원이 빠를 수 있다고 한다.

아무튼 서구의 근대화 따라잡기 식, 흉내내기 식 민주주의를 추구하지 않아도 인도나 한국, 중국, 베트남 등은 자신들의 전통과 역사에서 민주주의 방안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주장이다. 알렉산더 우드사이드 교수는 저서 ‘잃어버린 근대’(2006년)에서 ‘중국의 능력주의에 입각한 과거-관료제도야말로 또 하나의 근대였고, 이것을 유럽은 19세기에 받아들였다.’고 했다. 이어 포스트모던한 사고방식으로 김 교수는 “아랍의 민주화나 아시아의 민주화를 꼭 서구적 테두리에서 찾아야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런 주장은 계간지 ‘실천문학 106호’ 여름 특집물인 ‘정치를 넘어선 정치’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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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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