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마비에 갇힌 남자 ‘죽을 권리’를 심판받다

전신마비에 갇힌 남자 ‘죽을 권리’를 심판받다

입력 2012-03-14 00:00
수정 2012-03-14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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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법원 ‘조력자살 허용’ 심리 결정

그에게 느닷없는 불행이 닥친 것은 2005년 그리스 출장길에서였다. 그는 발작을 심하게 일으키다 온몸이 마비됐다. 이후 정신은 멀쩡하지만 손가락 하나도 꼼짝할 수 없는 ‘락트인증후군’ 환자가 됐다. 눈을 깜빡이는 것만이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한때 건장한 럭비 선수이자 스카이다이빙 광이었던 그에게 육신은 곧 감옥이다.

●2005년 이후 눈만 깜빡… “날 죽일 의사 처벌 말라”

영국 법원이 이 남자의 ‘죽을 권리’를 결정하기로 했다. 법원이 “치욕스러운 삶을 끝내달라.”고 요청한 토니 닉린슨(57)의 소송을 받아들였다. 그는 자신의 삶을 끝내는 의사를 살인죄로 처벌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런던고등법원 담당 판사 윌리엄 찰스는 12일(현지시간) 약자 보호 차원에서 “논쟁의 여지가 있다.”며 그가 지난 1월 제기한 소송의 심리 결정을 승인했다.

심리 결정 직후 닉린슨은 “조력 자살이라는 이슈가 법정에서 논의되어 기쁘다.”면서 “오늘날 사회가 맞닥뜨린 가장 중요한 이 문제를 정치인들이 계속 무시한다면 법정 논의 결과를 반박하기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20세기의 시각으로 죽음을 대하면서 21세기 약을 쓰려는 행태는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엔지니어링 회사의 고위 관리자였던 닉린슨은 2005년 발작 이후 목 아래로는 전혀 움직일 수 없다. 머리를 움직이거나 눈 깜빡임을 인식해 작동하는 음성합성장치로만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 약물 치료를 거부한 지는 5년이나 지났다. 간호사였던 그의 부인 제인은 BBC라디오4와의 인터뷰에서 “의료 기술은 계속 발전하지만 법은 그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죽음만이 남편의 유일한 탈출구”라고 호소했다.

‘죽을 권리’를 가리는 심리는 하반기에 열릴 예정이다. 사안의 중요성 때문에 고법 판사 2명이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고 더 타임스가 보도했다.

●英 자살조력에 최대 14년형… 하반기 심리 열릴 듯

현재 영국에서 자살 조력은 최대 징역 14년형에 처해진다. 때문에 스위스로 ‘자살여행’을 떠나는 영국인들이 매년 늘고 있다. 스위스의 안락사 전문병원 ‘디그니타스’에서 생을 마감한 영국인은 지난 1월 현재 180명으로 독일인 다음으로 많다. 유럽에서 안락사를 허용하는 국가는 스위스,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등이다.

닉린슨은 “장애가 너무 심해 자살여행을 떠날 수도 없는 처지”라며 “대체 어떤 나라가 국민들을 외국에서 죽게 하느냐.”고 항변한다. 하지만 영국 법무부는 의회가 법 개정을 통해 결정해야 할 사안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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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1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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