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필리버스터/이종락 논설위원

[씨줄날줄] 필리버스터/이종락 논설위원

이종락 기자
입력 2020-12-09 20:22
수정 2020-12-10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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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첫 정기국회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공수처법) 개정안 처리를 놓고 격렬한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개정안은 공수처장 추천위원회의 의결 정족수를 기존 7명 중 6명에서 3분의2로 완화해 야당의 비토권을 무력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국민의힘은 어제 본회의에서 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즉 필리버스터를 신청해 공수처법 개정안 통과를 막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국민의힘은 이날 국정원법 개정안, 대북전단살포 행위 처벌 규정을 담은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 5·18민주화운동특별법 개정안, 사회적참사진실규명법 개정안 등에도 무제한 토론을 신청했다

이 용어 자체는 16세기의 ‘해적선’ 또는 ‘약탈자’를 의미하는 스페인어에서 유래했다. 서인도의 스페인 식민지, 선박 등을 공격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 단어가 정치 용어로 자리잡은 때는 1854년 미국에서다. 당시 미 상원에서 노예제 허용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했던 캔자스ㆍ네브래스카법을 의결할 때 반대파 의원들이 장기간 토론 등으로 의사진행 방해를 한 것을 필리버스터라고 불렀다.

한국은 제헌의회 때 도입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64년 4월 20일 야당 의원 시절 동료인 김준연 자유민주당 의원에 대한 구속동의안 통과를 막고자 국회 본회의에서 원고 없이 5시간 19분 동안 연설을 한 것이 한국 최초의 필리버스터로 꼽힌다. 이후 1973년 국회법을 바꾸면서 사실상 필리버스터가 금지됐다. 하지만 여야 의원들의 몸싸움에 대한 비판 여론이 고조되자 18대 국회가 2012년 5월 ‘국회선진화법’을 통과시키면서 다시 부활시켰다.

최근의 필리버스터는 2016년 2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38명의 의원이 ‘8일 17분’간 ‘테러방지법’ 통과저지를 위해 한 것이다. 당시 이종걸 민주당 원내대표는 12시간 31분간 발언해 최장시간 기록을 세웠다.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은 지난해 12월 20대 국회에서 범여권이 4+1체제를 꾸려 공직선거법을 통과시키려 하자 이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진행했다. 민주당이 3일짜리 임시국회를 열어 대응하고 반대토론에 자당 의원들까지 포함시키는 등 희석화 전략을 펴는 바람에 법안 통과를 막지는 못했다.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전략이 힘을 못 쓸 가능성도 있다. 필리버스터 시작 후 24시간이 경과하고 무기명투표로 재적의원 5분의3 이상이 찬성하면 종결이 가능하다. 임시국회에서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를 반복하더라도 범여권이 24시간마다 표결로 종료할 수 있으니, 1주일 내 여권은 모든 법안을 처리할 수 있다. 지난 4월 총선에서 여권이 압승해 필리버스터까지 무력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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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rlee@seoul.co.kr
2020-12-1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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