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카이스트 총장 선거/박건승 논설위원

[씨줄날줄] 카이스트 총장 선거/박건승 논설위원

박건승 기자
입력 2017-02-19 22:20
수정 2017-02-20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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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카이스트 12대 총장에 오른 로버트 로플린 박사는 ‘과학계의 히딩크’로 주목받았다. 1998년 노벨상 물리학상 수상자이자 카이스트 최초의 외국인 총장이었던 까닭이다. 그런 그가 재계약 연장을 못 하고 2년 만에 중도 하차한 이유는 뭐였을까. 노벨상 수상자라는 독선에 빠져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측면이 크다. 그는 한국 최초로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인간형 로봇 ‘휴보’를 두고 “이거 가짜 아니냐”고 공공연히 말했다고 한다. 이런 소리를 듣는 ‘휴보’ 연구 당사자인 카이스트 교수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일본에 가서는 ‘카이스트는 아무것도 아니다’(KAIST is nothing)라고 카이스트를 비하하는 발언을 쏟아내자 교수협의회가 ‘로플린 is nothing’이라고 들고일어나는 해프닝도 있었다.
대학 총장은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같다. 무대가 연주회와 상아탑으로 다를 뿐이다. 지휘자는 오케스트라의 박자를 이끌어 내고 음악의 강약과 빠르고 느림을 조절한다. 그리고 음악의 느낌을 통일한다. 지휘자의 역량은 음악을 얼마나 잘 표현해내고, 얼마나 잘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대학 총장도 이질적인 구성원들 간에 하모니가 어우러질 수 있도록 하는 책임이 있다.

카이스트가 내일 총장 선거를 앞두고 마치 폭풍전야에 휩싸인 듯하다. 12년여 만에 처음으로 외부 영입 없이 한국 국적자인 내부 후보자 세 명이 이사회에서 일합을 겨룬다. 정부의 낙점을 받은 인사가 아닌 학생과 교수, 교직원 등 카이스트 구성원을 대변할 인물이 차기 총장을 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비등하다. 총학생회는 외부세력 개입을 막기 위해 세 후보를 대상으로 모의투표까지 해 놓은 상황이다. 그런데 결국 또 특정후보 낙점설이 불거진 모양이다. 어느 후보가 총장이 되도록 정부가 이사들에게 물밑 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어느 후보는 박근혜 대통령과 이런저런 인연이 있어총장으로 유력하다는 설이 나돈다.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현 정부 들어 국립대학 총장 인선을 놓고 잡음이 유난히 많았다. 경북대·해양대·충남대 등 5곳에서 2순위 후보가 총장이 됐고, 다른 4개 대학은 총장을 뽑았지만 청와대의 임명 거부로 길게는 2년 이상 공석인 곳도 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국공립대 총장 후보 블랙리스트’ 개입 의혹이 끊이지 않는다. 어느 대학 1위 후보자는 반정부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각서를 쓰라는 요구까지 받았다고 털어놨다. 급기야 지난달에는 8개 국립대 1순위 후보자들이 비선 실세 개입 의혹이 있다며 박영수 특검에 고소장을 내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카이스트 새 총장은 전적으로 이사회의 자율선택에 맡겨야 한다. 카이스트 총장 선거가 ‘경북대 사태’의 재판이 되면 그 대학 구성원과 총장뿐 아니라 국민이 불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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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승 논설위원 ksp@seoul.co.kr

2017-02-2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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