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금기 깬 트럼프/구본영 논설고문

[씨줄날줄] 금기 깬 트럼프/구본영 논설고문

구본영 기자
입력 2016-03-22 00:34
수정 2016-03-22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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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수정 헌법 제1조는 “의회는…의사 표현이나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그 어떤 법도 만들 수 없다”고 규정한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표현의 자유’에 지고지선의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징표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소수자나 약자를 차별하는 말만큼은 철저한 금기다.

특히 인종 문제는 극히 민감한 토픽이다. 명우 그레고리 펙이 가짜 유대인으로 나오는 고전 영화 ‘신사협정’의 한 장면을 보자. 주인공이 유대인을 사절하는 백인 전용 호텔에 들어서자 지배인이 “손님은 ‘헤브라이 종교’ 쪽입니까”라고 우회적으로 묻는다. 미국 사회에서 대놓고 소수 인종을 비하했다가는 ‘한 방에 훅 갈 수도’ 있음을 알려 주는 삽화다. 몇 년 전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에게 잘린 캐디 스티브 윌리엄스도 실언으로 큰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백인인 호주의 애덤 스콧을 도와 우승시킨 뒤 “검둥이를 확 밀어뜨리는 게 목적이었다”고 했다가 우즈와 미국민들에게 백배사죄해야 했다.

1980년대 미국 대학가에서 ‘정치적 올바름’(PC·Political Correctness) 캠페인이 시작된 배경이 뭐겠나. 성·인종·종교상의 소수자를 차별하는 표현을 삼가자는 취지였다. 인도에서 온 게 아닌데도 인디언으로 부르는 대신 쓰는 ‘네이티브 아메리칸’(원주민 미국인)이나 흑인을 대체한 ‘아프리칸 아메리칸’이란 표현 등이 이때 나왔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를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배려한다는 게 지나쳐 위선적이거나 어색한 표현을 낳기도 했다. 키 작은 이를 ‘위로 오르는 데 어려움 겪는’(vertically challenged) 사람으로 지칭하는 식이니….

올 미 대선 공화당 경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태풍의 눈’이다. 그의 본선 경쟁력에 회의적인 공화당 지도부가 주저앉히려 하지만, 여전히 선거판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미국 사회의 금기를 깨는 독설과 함께. 얼마 전 후보를 사퇴한 마크 루비오 상원의원이 무슬림을 경원시한 그의 발언을 문제 삼자 트럼프는 태연하게 응수했다. “9·11 테러를 봐라. 또 이슬람 국가에서 여자들은 얼마나 끔찍한 대우를 받나. 당신은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싶겠지만 난 아니다”라고….

미국 사회의 주류는 와스프(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 즉 앵글로색슨계 백인 프로테스탄트다. 트럼프의 뜻밖의 돌풍 비결은 거친 입담으로 와스프 저소득층을 비롯한 주류 일각의 가려움을 일정 부분 긁어 주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PC 언어’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트럼프의 행보가 큰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것도 분명하다. 유세장마다 그의 지지자와 반대자 간 폭력 충돌 사태가 빚어지고 있지 않나. 이는 다양성을 존중해 온 미국이란 ‘용광로 사회’의 파열음일 게다. 연일 미국 사회의 금기에 도전하는 트럼프의 직설적 화법에 대해 ‘아메리카 합중국’ 시민들이 내릴 최종 판단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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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2016-03-22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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