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필리버스터/박홍기 논설위원

[씨줄날줄] 필리버스터/박홍기 논설위원

박홍기 기자
입력 2016-02-25 00:04
수정 2016-02-25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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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퍼슨 스미스 상원의원은 연설을 계속한다. 23시간 넘는 발언 탓에 목도 쉬었다. 그러나 냉담했던 언론과 의원들이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이때 스미스를 비난하는 엄청난 양의 편지와 전보가 도착한다. 스미스는 마지막 희망이 사라지자 편지를 움켜쥐고 절규하다 쓰러진다. 페인 의원이 돌연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자신의 음모와 스미스의 결백을 밝힌다.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영화 ‘스미스 워싱턴에 가다’(1939)이다. 스미스의 의사진행방해(filibuster) 장면은 미국 영화사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 가운데 하나다.

필리버스터는 국회에서 다수당의 횡포를 저지하기 위해 소수당이 선택할 수 있는 합법적인 의사진행방해 수단이다. 제한 없는 토론으로 정의된다. 필리버스터는 16세기 스페인어 ‘약탈자’라는 의미에서 유래했지만 1854년 미 상원에서 현재의 정치적 의미로 처음 사용했다. 필리버스터를 진행하다 자리를 이탈하거나 주제와 관련 없는 내용을 하면 발언권을 곧바로 박탈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필리버스터는 미국 의회에서는 종종 등장하기 때문에 낯설지 않다. 미 의회에서 가장 긴 필리버스터 기록은 1957년 민권법에 반대해 24시간 18분 동안 연설한 스트롬 서먼드 전 상원의원이 갖고 있다. 8월 29일 오후 8시 54분쯤 연설을 시작해 다음날 오후 9시 12분에 끝냈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로 돌풍을 일으키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역시 2010년 부유층 세금감면 연장안을 막기 위해 8시간 30분간 연설했다. 최근 사례는 지난해 5월 국가안보국(NSA)의 무차별 정보 수집 중단을 요구하며 10시간 30분가량 발언한 랜드 폴 공화당 상원의원이 대표적이다.

필리버스터에 나서는 의원들의 자세는 결연하다. 서먼드 전 의원의 경우 연설 도중 화장실에 가지 않으려고 연설 당일 증기목욕을 했을 정도다. 물을 마시지 않고 입가에 물만 묻혔다. 기침 방지를 위한 약도 준비했다. 또 연설 시간을 채우려고 독립선언서, 인권법 내용 등을 읽기도 했다. 헌법을 통째로 읽은 의원들도 있다.

필리버스터의 정국이다. 국회의장이 그제 직권 상정한 테러방지법의 본회의 처리를 무산시키고자 야당이 필리버스터 카드를 꺼냈다. 필리버스터는 1973년 의원 발언 시간을 최대 45분으로 제한했던 국회법이 신설되면서 폐기됐다가 2012년 부활했다. 국회법 106조에 ‘재적의원 3분의1 이상이 서명한 요구서를 국회의장에게 제출하면’ 가능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64년 한일협정 의혹을 제기한 김준연 자유민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막기 위해 5시간 19분 연설한 적이 있다. 이후 52년 만이다. 더불어민주당 은수미 의원이 어제 10시간 18분으로 필리버스터 국내 최장 기록을 경신했다. 야당의 필리버스터는 선거구 획정안 처리가 예고된 26일까지 계속될 것 같다. 19대 국회는 이래저래 최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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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2016-02-25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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