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세운상가 재생/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세운상가 재생/서동철 논설위원

서동철 기자
서동철 기자
입력 2016-01-29 17:56
수정 2016-01-29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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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세운상가를 두고 건축사학자들은 19세기 유행한 파리의 아케이드(Passage Couvert)를 떠올린다. 글자 그대로 지붕이 덮인 통로가 있는 상점가다. 중세의 파리 거리는 좁고 불결했는데 화려한 신상품을 편안하게 쇼핑할 수 있고 카페와 화랑도 줄지어 들어선 아케이드는 크게 각광받았다. 하지만 19세기 후반 파리의 가로가 정비되면서 상점이 늘어나고 백화점이 줄지어 생겨나면서 아케이드는 사양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세운상가는 1967년 완공된 뒤 전기·전자·의류·잡화 등 식료품을 제외한 종합 쇼핑센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신세계 백화점 주변에 미도파 백화점과 롯데 백화점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서울의 고급 상권은 남대문로로 옮겨 갔다. 그럼에도 세운상가는 1980년대까지도 음향기기부터 19금(禁) 영상·출판물까지 없는 게 없는 서울의 대표적 ‘욕망의 거리’였다.

하지만 전기·전자 분야마저 용산 전자상가와 테크노마트가 생기면서 세운상가는 중저가나 중고품을 취급하는 한물간 상가의 이미지로 굳어져 갔다. 겉모습은 초라해도 중소기업급 매출을 올린다던 기계·공구가게마저 청계천 복원으로 상당수가 떠나면서 상권은 더욱 축소됐다. 을지로 국도극장과 청계천의 아세아극장·바다극장이 사라진 것도 세운상가 문화의 몰락을 넘어 세운상가 상권 자체의 몰락을 의미할 수밖에 없었다.

건축물로서 세운상가에 대한 평가도 여전히 초점은 없다. ‘한국 현대건축의 선구자’로도 불리는 김수근이 설계했지만, 제자들도 세운상가에 이르면 명쾌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그저 ‘스승이 세운상가를 설계하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것이 속마음인 듯하다. ‘개발시대의 무리수’로 ‘개발시대의 후유증’을 낳은 대표적 사례로 꼽히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니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세운상가를 철거하고 녹지축을 만든다고 했을 때도 건축가들의 보존 운동은 없었다.

김수근이 세운상가 개발에 참여한 것을 두고 ‘일생일대의 실수’라고 건축학계에서는 평가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가 세운상가 설계에서 의도한 것은 분명하다. 길이 1㎞의 건축물에 복합적인 사회·경제적 기능을 담은 ‘도시 안의 도시’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표적 건설회사들이 분할 개발하면서 그의 구도는 통합성을 상실해 버린 것이 사실이다.

서울시가 세운상가를 재생하는 사업을 벌인다고 한다. 그러지 않아도 역사적 평가와 관계없이 이 일대는 최근 ‘스타트업’ 적지로 각광받고 있다. 재생 사업 내용도 상가군(群) 사이의 접근성을 높이고자 공중보행교를 설치하는 등 김수근의 애초 설계 의도를 떠올리게 한다. 광화문을 중심으로 서쪽 홍대 앞의 ‘소비적 젊음의 거리’와 비교할 수 있는 ‘생산적 젊음의 거리’를 동쪽에 조성하는 이 사업은 서울의 미래를 위해서도 성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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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2016-01-3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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