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욱동 창문을 열며] ‘더치페이’의 아름다움

[김욱동 창문을 열며] ‘더치페이’의 아름다움

입력 2016-10-16 22:40
수정 2016-10-16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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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김영란법’으로 일컫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지난달 28일부터 전면적으로 시행에 들어갔다. 김영란법은 한국 사회 전반을 크게 바꿔 놓을 것으로 보인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데 경제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지만 그동안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부정과 부패의 관행을 끊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법에 거는 기대는 무척 크다. 올해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행하는 세계경쟁력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아홉 번째로 가장 부패한 국가라는 오명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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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욱동 문학평론가·UNIST 초빙교수
김욱동 문학평론가·UNIST 초빙교수
김영란법의 시행과 관련해 최근 부쩍 대중 매체에 자주 등장하거나 우리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용어 중에 ‘더치페이’라는 것이 있다. 비용을 각자 부담하는 행위를 일컫는 말로 어려운 한자어로 갹출(醵出)이라고 한다. ‘추렴’이라는 말도 본디 한자어 ‘출렴’(出斂)에서 비롯하기는 했지만 요즈음에는 순수한 토박한 말로 간주하는 것이 일반적 추세다. 그러나 국립국어원에서는 ‘더치페이’라는 외래어 대신 ‘각자 내기’라는 한글로 순화해 사용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최근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시종 충북지사가 김영란법에 따라 밥값을 ‘더치페이’했다고 하여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박 시장은 얼마 전 충북을 방문해 첫 일정으로 이 지사와 조찬 회동을 했다. 청주의 한 호텔에서 만난 두 사람은 아침밥을 함께 먹으며 밥값을 각자 지불했다는 것이다. 비단 고위 공직자만이 아니다. 요즈음 웬만한 식당에 가면 식사한 뒤 각자 밥값을 지불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김영란법의 한도인 1인당 3만원을 넘기지 않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 ‘더치페이’라는 용어는 ‘핸드폰’, ‘스킨십’,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라는 말처럼 한국에서만 사용하는 대표적인 콩글리시다. 정확한 영어로는 ‘고잉 더치’(going Dutch)라고 하거나 조금 오래된 표현이기는 하지만 ‘더치 트리트먼트’(Dutch treatment)라고 해야 한다. 그러나 정통 영어 표현이건 한국식 영어 표현이건 ‘더치’라는 말은 약방의 감초처럼 꼭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이 표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17세기 영국·네덜란드 전쟁과 만나게 된다. 17세기 초엽 네덜란드는 아시아 지역의 식민지 경영과 무역 활동을 위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세워 영국과 식민지 경쟁에 나섰다. 이렇게 네덜란드와 영국은 식민지 문제로 충돌하여 무려 세 차례에 걸쳐 전쟁을 치르기도 했다. 이때부터 이 두 나라는 서로 적잖이 갈등을 빚으면서 상대국을 여러 방법으로 헐뜯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언어를 통해 상대방을 비하하거나 폄하하는 방법이었다. 가령 영국 사람들은 좋지 않은 일에는 하나같이 ‘네덜란드’라는 말을 붙이기 일쑤였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 삼촌’이라고 하면 필요 이상으로 엄하게 남을 꾸짖는 사람을 일컫는다. ‘네덜란드 부인’이라고 하면 날씨가 더운 여름철 손발을 얹거나 껴안고 자는 죽부인을 말한다. 술김에 부리는 허세는 ‘네덜란드 용기’라고 부르고, 별로 고맙지 않은 위로는 ‘네덜란드 위로’라고 부른다. 같은 버터라고 해도 ‘네덜란드’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우유로 만든 진짜 버터가 아니라 인조버터로 둔갑한다. 그런가 하면 영국 사람들은 자살 행위를 ‘네덜란드식 행위’라고 부른다.

물론 ‘고잉 더치’나 ‘더치 트리트먼트’라는 용어의 역사를 다른 데서 찾는 학자들도 없지 않다. 외국인 혐오에서 비롯한다기보다는 ‘더치 도어’(Dutch door)라는 용어에서 왔다는 것이다. 네널란드식 문이란 상하 2단식으로 되어 있어 따로따로 여닫는 문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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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고 보면 각자가 비용을 지불하는 ‘더치페이’만큼 합리적인 지불 방식도 없다.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라고 네덜란드 사람들을 탓할 수는 없다. 김영란법이 아니더라도 벌써 받아들였어야 할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관습이다. 체면 때문에 마지못해 혼자서 비용을 지불한 뒤 마음이 불편해지거나 자신의 비용을 남에게 대신 지불하게 해 뒤끝이 개운치 않은 것보다 얼마나 기분이 좋은가.
2016-10-17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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