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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펠로시 만났어야 했다? 두 중국 전문가 “안 만난 게 나았다”

입력: ’22-08-04 17:44  /  수정: ’22-08-04 18:09
이념 진영과 소속 정당에 따라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 의장의 짧은 방한과 우리의 외교적 대응에 대해 상충하는 시선이 격렬하게 맞부딪혔다. 중국이 저토록 민감하게 구는데 윤석열 대통령이 안 만나길 잘했다는 의견도, 막바지에 마지 못해 40분 동안 펠로시 의장과 전화 통화를 함으로써 외교적 균형을 취하고 실리도 얻은 것으로 보는 이들이 있다.

반면에 미국의 의전 서열 3위가 한국을 찾았는데 공항에 나가 제대로 영접도 하지 않고 미국이 내민 손을 뿌리쳐 앞으로 한미관계에 나쁜 영향이 미치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도 있다.

대통령실은 전날 펠로시 의장의 방한이 윤 대통령 휴가 기간(1∼5일)과 겹쳤기 때문에 별도의 만남 일정을 잡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때는 통화를 하겠다는 예고도 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의 휴가 일정 때문에 만나지 않기로 한 것은 양측이 완벽히 양해했던 사안인데 그래도 동맹국의 하원 의장이 방한한 만큼 별도의 환영을 표하고자 전화 통화를 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 대통령실의 설명이다.

펠로시 의장의 ‘카운터파트’는 우리 국회의 수장이자 국내 의전서열 2위인 김진표 국회의장이란 점도 대통령실은 강조했다. 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은 이날 YTN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국회의장이 파트너인데 윤 대통령이 휴가 중에 (펠로시 의장을) 만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주장했다. 펠로시 의장은 이날 오전 김진표 국회의장과 회담을 했다.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펠로시 의장을 직접 만나는 것이 적절한 외교적 판단이었다는 외교가 안팎의 지적도 제기된다.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여름 휴가를 세이크 나세르 당시 쿠웨이트 총리의 면담 요청을 이유로 당초 주말을 포함한 일주일에서 닷새로 줄였던 사례도 회자됐다. 당시 이 대통령은 여름휴가를 마친 다음날 나세르 총리를 만났다.

대통령실이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자 펠로시 의장이 대만을 방문하고 곧바로 한국을 찾는 점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시선도 고개를 들었다. 중국의 노여움을 사 향후 외교에 큰 부담을 줄까봐 조심했다는 취지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미 권력 서열 3위인 하원 의장이 왔는데 대통령이 안 만난다는 것은 얘기가 안 된다”며 “꼭 만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에서도 윤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을 만나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유승민 전 의원은 페이스북에 “동맹국 미국의 의회 1인자가 방한했는데 대통령이 만나지 않는다는 건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펠로시 의장이 다른 나라에서 정상을 만나고 방한했는데,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과) 만나지 않는다’고 했다가, 만남을 조율한다고 했다가 다시 번복했다”며 “아마추어 국정 운영”이라고 비판했다.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이 휴가 중이어서 (펠로시 의장을) 안 만난다는 것은 궁색한 변명”이라면서도 “미국이 중국과 상당한 마찰을 빚고 방한하는 것인 만큼 펠로시 의장을 만나지 않아도 크게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 대변인 출신인 김의겸 의원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펠로시를 만나는 것은 미중 갈등에 섶을 지고 불길에 뛰어드는 것으로, 그를 슬쩍 피한 건 유일하게 잘한 일”이라고 지적한 뒤 “문재인 정부를 향해 ‘친중 굴종외교’란 말은 입에 담지 말라”고 했다.

펠로시 의장이 막 한국을 향해 출발한 3일 오후와 방한 이틀째인 4일 오전 두 중국 전문가의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두 전문가 모두 “결과적으로 안 만나게 되면 우리에게 잘된 일”이라고 했다. 특히 3일 오후 만난 이동률 동덕여대 교수는 “펠로시 의장의 과잉된 행동이 미국을 위해서도 좋지 않을 것이며, 대만도 (저렇게 열렬히 펠로시 의장을 환영하고 있지만 중국의 봉쇄를 불러 들여) 좋지 않은 결과를 떠안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이 어떤 이유로 펠로시 의장을 만나지 않겠다고 결심했는지 모르겠지만 유일하게 잘한 선택”이라고 반겼다. 이어 “윤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을 만나지 않는 것이 우리에게는 한결 나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못박았다.

김희교 광운대 교수는 4일 오전 “반도체공급망동맹 ‘칩 4’에 가입하라고 미국이 우리를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에 솔직히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대면서 중국에 우리가 일방적으로 한미동맹에 끌려가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미국에는 그들의 뜻대로 끌려가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은 좋은 일”이라고 더욱 적극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는 삼성전자가 미국 행정부의 반도체 전략 구상에 끌려다니지 않도록 손에 무기를 쥐어줘야 할 언론과 정치권이 왜 빨리 그들의 요구대로 따르지 않느냐고 종지묵을 들이대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그는 외교적으로 어리숙한 것처럼 굴면서도 실리를 챙기는 외교를 대통령실이 한 것이라면 대단히 올바른 선택을 한 것이라며 “그동안 우리 외교는 너무 처음부터 끝까지 투명하게 모든 것을 드러내는 바람에 대사를 그르치는 일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윤석열 행정부의 일방통행 인사와 정책 추진을 비판하던 야당과 진보 진영 일각에서 이번 ‘펠로시 패싱’을 반기는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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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표 국회의장이 4일 국회에서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과 공동언론발표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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